읽는 직업 -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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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좋아하게 되면서 책 곁에 오래 있고 싶었다. 여가시간만으로는 좀 부족한 느낌이다. 몸과 정신이 멀쩡할 시간은 제한적인데 읽어야 할 것들은 매일 쌓여간다. <읽는 직업>이라는 제목에 단박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었다.


* 책의 세계가 있다.

책 세계의 일원으로서 저자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행한 것들을 전해준다. 글쓰기의 힘과 글쓰는 일을 밥벌이로 할 때의 난처함과 책 만드는 사람들의 치열함과 각양각색의 독자들. 너무나 매혹적인 세계다.


"... 글쓰기란 곧 "수행성의 과정"이며 이는 외부로부터 자율성을 지켜나가는 "삶의 형식과 그 품위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163p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가 캐낸 삶의 가치 일부를 자기 삶의 자원으로 삼는 것이다." 182p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쓴다. 그처럼 사적인 독서는 의료 시스템, 종교 권력, 장구한 역사를 지닌 가족이 껴안지 못한 자기 문제를 거울을 들여다보듯 꿰뚫어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66p



*치열한 책읽기

책읽기에 정도란 없다고 생각해왔다. 손에 잡히는대로, 읽고 싶은 순서대로, 읽히는 만큼 멋대로 읽으면 전부라 여겼다. 읽은 책 권수에 집착하고 취향과 재미 위주로 읽었다. <읽는 직업>을 통해 처음으로 치열하게 읽는 방법을 접하고 놀랐다.


"어쩌면 독서의 유용성이란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읽기보다 오히려 자기 취향과 욕구를 억누르고 작가의 대표작으로 직진해서 들어갈 때 더 크게 발휘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취향이란 대부분 좁기 마련이라 자기 발목을 스스로 잡을 때가 많다." 179p


발간 해서 1000권만 나가는 책. 대중성보다는 원고를 보고 만드는 책. 기존 사고를 뒤흔들 힘이 있는 책. 나는 그 중에서 얼마를 읽어봤나. 공부하듯 열심히 읽는 태도는 책 만드는 치열함에서 나온 것일까. 작가가 그린 편집자는 외국어 공부, 학계 논문, 사회이슈, 작가의 전작 등등 끊임없이 학습하는 사람이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에 능통해 에이전시로부터 수많은 원서를 받아 상당 분량을 읽어본 뒤 A4 8장짜리 기획서를 작성한다. 난도, 오퍼 적정액, 평가 및 감상을 적고, 본격적으로 책 소개 5쪽, 해외 서평 2쪽을 작성한다." 132p 


물론 작가님은 독자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해주신다.

"읽고 싶고,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해서 독자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지는 않는다. 보통의 독자들은 책을 읽으려면 삶의 일부를 잘라내야 하고, 스스로 책 읽는 훈련을 해야 하며 돈까지 지불해야 한다. 물론 책의 가격은 책이 담고 있는 가치에 비하면 턱없이 저렴하지만, 여타의 욕구는 언제나 지적 욕구를 쉽게 이긴다." 30p


내가 동의할 의견을 가진 책만 골라서, 내 감정에 들어맞는 부분만 편집해 감상하면서 나는 얼마나 편협한 독서를 해 왔던가. 그저 읽은 책 목록에 올리려 다급하게 책장을 넘겼던 무수한 책들. 성찰을 곧장 반영할 순 없지만, (읽고 있는 책들과 읽으려고 쌓아둔 책들이 산더미다.)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순간이 있기에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삶이 나아질까. 여기에는 "꽤 그럴 것이다."라고 답하고 싶다. ... 이렇게 책 한가지만 이야기하며 마치 책 바깥의 삶은 없다는 듯이 말하는 것을 싫어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 안에 완전히 들어오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책이 바로 그런 세계다." 225p

책을 쓰거나 읽거나 만드는 이들은 이처럼 부의 세계에서 한발 떨어져 나와 자신들만의 빽빽한 밀림을 만든다. 그 밀도가 일상을 구성할 때 편집자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가 말한 ‘이 땅 위에서의 저렴한 삶‘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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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 정치풍자. 내 인생에 벽창호같은 상대들을 바퀴벌레에 대입하며 읽다보면, 조금은 응어리가 풀리지 않을까.

이 소설은 허구다.
 이름과 인물들은 작가가 상상해낸 것이며, 
현존하거나 세상을 떠난 실제 바퀴벌레와
유사점이 있다면 전적으로 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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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언 매큐언과 카프카

카프카의 <변신>을 처음 접했을 때, 충격과 감동에 빠졌던 (지금보다 더) 얄팍한 초보 독자였다. 그렇다보니 아무리 가볍게 넘기는 홍보문구래도, "카프카<변신>을 모티프로 그린 이언 매큐언의 신랄한 풍자극"이라는 말에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첫 문장을 읽으면서 어마어마하게 좋다고 생각한 것도 아직 생생하다. <변신>을 읽은 지 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바퀴벌레>의 첫 문장을 보는 순간 바로 그레고르 잠자가 생각나면서 기대감이 한껏 고양되는 경험을 했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변신> 첫 문장


"그날 아침 영리하지만 전혀 심오하지는 않은 짐 샘스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거대 생물체로 변신해 있었다." <바퀴벌레> 첫 문장


하지만 모티프에 집중하면 안 된다. "풍자극"에 방점을 두고 보아야 한다.

처음 읽으면서는 카프카를 생각하며 어떤 충격을 경험할지 기대하며 봤기에 실망했었다. 두 번째에는 모자란 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유머 있는 정치 풍자 소설이었다. 이 작품은 카프카의 <변신>에 견주어 볼 것이 아니다. 현실과 비견했어야 하는 작품이다.


*풍자의 묘미

"이 소설은 허구다. 이름과 인물들은 작가가 상상해낸 것이며, 현존하거나 세상을 떠난 실제 바퀴벌레와 유사점이 있다면 전적으로 우연이다."

서문부터 풍자가 강렬하다. 뿐만아니라 곳곳에서 작가의 분노가 담겨있다. 브렉시트 찬성자를 역방향주의자라고 하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현실로 만드는 과정, 언론이 그 과정에서 편파적이고 자극적인 뉴스를 만들고 진실을 가리는 모습이 촌철살인 담겨있다. 무엇보다도 영국 지도자들을 현대 도시에서 혐오의 대상인 바퀴벌레의 현현으로 그린 것이 가장 큰 의견이지 않을까. 특히나 바퀴벌레가 인간의 생물학적 모습과 움직임에 혐오를, 바퀴벌레의 정상성에 그리움을, 느끼는 묘사가 우습고 절묘하다.


"그는 공황에 빠지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가만히 누워 있었다. 입안에서 젖은 상태로 웅크리고 있는 한 기관, 널빤지 모양의 미끌거리는 고깃덩어리가 멋대로 움직이며 입이라는 커다란 동굴을 탐사할 때 특히 역겨웠고, 그는 조용히 경악하며 그것이 막대한 수의 이빨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13~14p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모습에 적응하면서 느꼈던 혼란에 비견할 만 하지 않나.


브렉시트의 과정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들도 구석구석 숨겨져 있어 보물찾기 같다.


"...극단적 역방향주의자가 슈퍼마켓에서 시계방향주의자 하원의원의 목을 잘랐어요. 한 시계방향주의자 깡패는 유명 역방향주의자의 머리에 밀크셰이크를 들이부었고요."

"충격적인 일이었지." 총리가 동조했다. "그 사람은 막 세탁한 블레이저를 입고 있었는데." -2016.6.16 브렉시트 반대하던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 총격 피살사건


"저 사립학교 출신들에게 화가 나는 건 저들의 특권의식 때문입니다." 사이먼이 말했다. "물론, 총리님은 제외하고요." -전 총리 데이비드 카메론, 보리스 존스, 마이클 고브 등 당시 영국 고위각료들은 이튼스쿨과 옥스퍼드대학(부유층의 벌링든비밀사교클럽) 출신 백인 남성


*시대의 맥락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부 기득권, 이에 동조해 뉴스를 왜곡하는 언론, 생업에 바빠 숙고하지 못하는 대중이 자주 눈에 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출되었을 때,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찬성으로 결론 났을 때, 유럽이나 일본의 우파가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남발할 때 등등. 남의 일이었을 때는 혀 한 번 차며 넘어갔는데, 한국 사회에서도 이런 경향이 뚜렷해지는 것 같다. 일베나 이대남같은 극우의 일부 의견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대중에게 상처주는 언론, 몇몇 선거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결과(이제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시 미국 시민들이 느꼈을 충격을 이해한다.)가 소설을 읽는 동안 내 곁에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 하게 되는 질문, "Warum? 왜?"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 왜, 무슨 목적으로, 당신은 나라를 분열시키는 겁니까? 왜 당신은 가장 가까운 우방국들에 이런 요구들을 하며 우리를 적으로 돌리는 겁니까? 왜?" -109p

베를린에서 독일 수상과 만나며 주인공은 warum?이라는 말만 겨우 알아듣는다. 왜일까? 이들은 왜 이런 분열을 조장하는가. 목표 달성 후 인간의 모습을 벗고 바퀴벌레로 돌아가기 전, 주인공의 연설로 작가는 답을 갈음한다.

"...우리의 라틴명 블라토데아가 암시하듯, 우리는 빛을 피하는 생물입니다. ... 역방향주의라는 광기가 일반 대중을 더 가난하게 만들면-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우리는 번성할 것입니다. 착하고 성실한 보통 사람들이 그동안 속았고 앞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다른 착하고 성실한 보통의 존재인 우리가 더 번성하고 더 큰 행복을 누리게 되리란 사실을 알게 되면 커다란 위안을 받을 것입니다. ..." -123p


물론 지성있는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정치적 의견이 다르다고 그들을 혐오하면 안되겠지만, 어떤 선거 결과나 특정 발언과 정책으로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한풀이의 장이 되는 단편이다.


그날 아침 영리하지만 전혀 심오하지는 않은 짐 샘스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거대 생물체로 변신해 있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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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과 무관한 능력이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바흐의 푸가는 생존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러나 이들이 남긴 작품‘은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는 데 반드시 필요했던 능력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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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시절˝ 무기가 된 책

이들에게 책은 낡고 모순된 세상을 돌파하기 위한 하나의 무기였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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