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아, 다른 동물을 취하여 탐욕스러운 몸이 비대해지는 것은 얼마나 큰 범죄인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계속 살아가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죽이다니 말이다.˝ (민음사, p.50)

뭔가 먹고싶은 마음에 시달리며 이런저런 메뉴들을 떠올리는 와중에 이런 문장을 만나면 뜨끔한다. 방금 먹으려고 입맛다시던 생명체들 눈동자가 떠오르면서...

그럼 맛있는 문장이나 먹자 싶다. 권여선 작가님의 문장은 맛깔스럽다. 첫 꼭지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라일락과 순대˝라니. 꽃놀이와 김밥을 이렇게 쓰다니. ˝김밥은 아름다운 음식이다. 재료의 색깔만 잘 맞추면 이보다 어여쁜 먹거리가없다. 그래서 김밥에는 꽃놀이와 나들이의 유혹이 배어있는지 모른다. 지참하기 간단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꽃밭을 닮아서.˝(p.41)
먹는 얘기일 뿐이데, 왜 식욕이 가라앉을까. 아마 작가님 표현처럼 ˝혀의 미뢰들이 혀의언어를 알아듣고 엄청난 위로를 받기 때문˝(p.156)일 것이다.

<채소마스터클래스>에는 작년에 채소 요리계에 일대파란을 일으킨 당근뢰스티가 실려 있다. 대파수프, 당근 라페는 계속 찾게된다.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채소요리에 빠지게 만든 책. 정멜멜 작가님의 사진도 감각적이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요리법과 요리철학이 담긴 정말 이상한 책이다. 그렇지만 이런 말에 어떻게 저항하겠는가. ˝식사를 간단히, 더 간단히, 이루 말할 수 없이 빨리-준비하자. 그리고 거기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는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곱게 바느질하는데 쓰자. 자연과 대화하고, 테니스를 치고, 친구를 만나는 데 쓰자. 생활에서 힘들고 지겨운 일은 몰아내자.˝(p.32)

<나의 먹이>의 들개이빨 작가님은 현대대한민국판 헬렌 니어링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이 책의 레시피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힘들고 복잡한 레시피에 자신 없는 요리바보라서 이런 책이 좋은 것일지도.

<소의 비밀스러운 삶>은 평화로운 영국 목장 풍경을 그리는 짧고 귀엽고 파릇파릇한 책. 홍한별 번역가님은 이 책을 읽으면 그냥 영국 시골에서 농장이나 하고싶어진다고 하셨다.(번역가님, 저도요) 소와 닭과 개와 말과 돼지들의 귀여운 우당탕탕 농장생활을 보고나면, 어떤 음식은 그냥 안 먹어도 될 것같다.
˝송아지는 보통 태어나자마자 강제로 어미에게서 떼어 내어 여러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키우거나 아니면 그냥 총으로 쏘아 죽인다.˝(p.20)

하루종일 이류 모를 배고픔에 시달리다 책으로 대신 군것질 해 본 며칠이었다. 거짓 배고픔이었는지 채마클의 맛잇는 채소 레시피 덕이었는지, 요리만 하면 실패하는 요똥이어서인지, 한결 나아졌다. 좋은 책으로 한 어린 양을 붙들어준 모든 작가님들께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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