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는 다른 길을 두고 하필 구덩이를 파고 누워 곡기를 끊는길을 택하겠다는 것일까. 나는 제 무덤을 파고 산 채로 들어가서서히 굶어죽어가는 사람의 표정과 마음을 상상해본다. 어렸을 때
‘자신을 죽이다kill myself‘라는 영어 표현의 강력한 실감에 놀란 적이 있는데 (‘자살‘이라는 말은 ‘suicide‘가 그렇듯이 내게는 관념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그가 하려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하늘을 보고 누워 자신을 서서히 죽이는 일. 이 죽음은 신이라는 가장 결정적인 관객을 염두에 둔 최후의 저항처럼 보인다. 불가능과 무의미에 짓밟힐 때 인간이 무책임한 신을 모독할 수 있는 길 중 하나가그것이지 않은가.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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