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닫아버려야만 견딜 수 있는 하루.
해결되지 않은 과거들이 현실에 불쑥 침입하는 일상.
나라면 어찌했을까, 내 지경을 더 넓혀주는 소설이다.

엘프리드 수용소 시절 이후로 그는 머리의 대부분을 닫아버리고, 걷고 먹고 잠자고 노래 부르는 데 도움이 되는 부분만 작동시켰다. 그저 잠깐씩 일을 하면서 간간이 섹스도 좀 할 수만 있다면, 그로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었다. 그 이상을 바란다면 핼리의 웃음과 식소의 웃음까지 함께 떠올려야만 했다. 땅속에 만들어놓은 궤짝 속에서 부들부들 떨던 일, 손에 망치를 쥐면적어도 몸은 떨리지 않았기 때문에 채석장에서 노새처럼 일하는 대낮이 차라리 고마웠던 일을 기억해야만 했다. 그 궤짝은 스위트홈도 하지 못한 일, 노새처럼 일하고 개처럼 사는 삶도 하지 못한 일을 했다. 그가 제정신을 잃지 않도록 아예 미쳐버리게 만든 것이다. - P75

그때마다 베이브 석스는 이렇게 타일렀다. 
"내려놓아라, 세서, 칼과 방패를, 내려놔, 내려놓아. 둘다 내려놓아라. 강가에 내려놓아. 칼과 방패 모두. 더는 싸울 궁리를 하지 마라. 그 더러운 것들을 모두 나려놓아. 칼과 방패 모두." 
꾹꾹 주무르는 손가락과 조용하게 타이르는 목소리를 세서는 따르곤 했다. 불행과 후회, 원한과 상처를 막아내기 위한 육중한 칼들을, 저 아래 맑은 물이 흘러가는 강기슭에 하나씩하나씩 내려놓았다. - P146

다른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그들은 사람들이 ‘삶‘이라고 부르는 화냥년을 죽였다. 그들을 계속 살아가게 했으니까.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라고, 또다른시간의 일격이 마침내 이것을 끝낼 거라고 믿게 했으니까. 그녀의 숨통이 끊어진 뒤에야 비로소 그들은 안전해질 것이다. - P184

"맞습니다. 주인님. 그렇게 해주셨요."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당신은 내 아들을 가졌고 난 만신창이가 되었죠. 내가 하늘나라로 간 후에도, 당신은 내 몸값을 치러야 한다며 내아들을 다른 데 빌려주겠죠. - P245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도 충분히 힘들었다. 미래는 지는 해이며, 과거는 뒤에 남겨져야 할 무엇이었다. 그런데 그게 가만히 뒤에 남아있지 않는다면, 그래, 그때는 발로 짓밟아줘야 마땅하다. 노예의 삶이든 자유인 의 삶이든, 하루하루가 시험이고 시련이었다. 자기 자신이 해결책인 동시에 문젯거리가되는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 겪는 것으로 족하니라."
아무도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도 어른이 된 악마가 원한을 품고 식탁에 앉은 꼴을 감당해야할 필요는 없었다. -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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