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복을 입은 여성들
빅토린 지음 / 스크로파(SCRōFA)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단순히 감각적인 표지와 흥미로운 제목만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다. 그래서였는지 그저 대단한 인물을 숭앙하는 위인전이거나 '세상에 이런 일이'풍의 놀라운 이야기 모음집이겠거니 했다. 책의 서두에서 글쓴이가 그런 점을 염려하면서 썼다고 못을 박았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단순한 화재거리라고 하기에는 보석같은 문장들이 많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옷에 대한 이야기도, 여성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두 자유에 관한 이야기"-195p 였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필요에 따라 조명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작가가 조명하는 대상과 방식이 재미있다. 묻히고 지나가버린 이야기가 작가를 만나 생생해졌고, 오늘날의 맥락과 닿으면서 풍성한 이야기로 살아났다.

 사진의 역할이 컸다. 거센 시류의 흐름에도 당당하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의 매력을 사진이 보여준 것이 아닐까. 작가도 부러 사진이 남아 있는 근대의 인물을 선정했다고 밝히고도 있다. 모델과 같은 몇몇 장면들이 아직도 떠오른다.

 사람들의 매력도 제각각, 사연도 저마다였다. 자신이 응원하게 되는, 혹은 매혹되는 인물이 누구인지 꼽아 보는 것도 이 책의 재미 중 하나.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나는 이들이 꿈꾸던 세상을 살고 있다는 점이 새삼스럽다.(다행히 여성이 바지정장을 입을 수 있고, 경찰도 되고, 시가도 피고, 청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것은 여전히 존재한다. 당시의 섬뜩했던 통념에 마주 섰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만큼 왔을 터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오도록 하려면 나는 지금의 자리에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아진다. 책을 열 때와 조금을 달라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문을 열어젖히고 떠나라. 주저하지 말고 세상의 모든 것을 보아라. 경계선을 가뿐히 넘어라. 왜냐하면 삶은 위대한 모험이니까.‘ - P41

‘이러다 여자가 경찰도 되고 시가도 피고 청혼도 하는 세상이 오겠다.‘ - P50

"난 남자 옷을 입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나 자신의 옷을 입을 뿐."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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