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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로 사는 법 - 여행홀릭 심리학자가 쓴 아주 특별한 여행 심리 안내서
제이미 커츠 지음, 박선령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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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첫 해외 여행에서, 숙소와 비행편을 알아볼 때는 무척 신났지만, 막상 그곳에 도착했을 때 다른 나라에 왔다는 느낌을 많이 받지 못해 생각보다 시큰둥해했던 기억이 난다. 인종도 다르고 문화, 날씨도 다른 지중해 여행이었음에도 그랬다. 첫 여행이라 너무 압도되어서 그랬던 것일까. 하지만 그 이후로 했던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텐션은 언제나 숙박편을 알아볼 때와 짐가방을 쌀 때가 가장 높았고, 막상 비행기에서 내려 그 땅을 밟고 낯선 풍경을 바라보면 그 감정이 가라앉았다. 

 

왜 그럴까 내내 궁금했던 부분을<행복한 여행자로 사는 법>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행복한 여행자로 사는 법>은 여행을 최대한 즐길 수 있는 방법들을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 중일 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로 나누어서 여러 연구들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당연히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인데, 이때 중요한 건 본인의 성향을 잘 파악해서 그에 맞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입장 시간이 길어도 개의치 않는 사람이라면 굳이 패스트패스를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을 내린다거나, 가격은 상관없지만 중심지가 시끄러워서 다소 조용한 곳에서 숙박을 하고 싶다거나 등의 개인적 성향 말이다. 

또 저자는, 출발하기 전에 여행 중에 겪을 상황들을 미리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도 좋은 방법임을 말해 준다. 안 좋은 상황도 예상해보고 그에 대한 대응도 미리 생각해 두면, 실제 그 상황이 닥쳤을 때 덜 당황하고 조금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준비들은 여행  최대한 그 시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 위한 전초전이다몰입은 여행하는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든다. 

사진 촬영을 생각해보자. 꼭 찍어야 할 것 같다는 강박이나 sns 과시욕에 의해 사진을 찍는 것이라면 그것은 정작 남기는 게 없는, 여행에 독이 되는 행위일 뿐이다. 사진 촬영은 추억을 되돌아보는 용도로만 이용하는 게 좋다. 어쩌면 추억용으로는 그림을 그리는 게 더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 당시의 냄새, 소리까지 더 생생히 기억하게 된다고 하니까. 

그리고 여기서 작가는 한 가지 더 재밌는 제안을 한다. 바로 멋진 해변의 풍경을 보고 싶다면 숙소는 해변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잡으라는 것인데, 여행 중의 몰입, 즉 집중력은 매일 보는 일상이 익숙해지면 자연히 떨어지게 때문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기대감을 낮추라는 것이다. 커튼을 쳐 놓고 며칠은 바깥 구경을 하고, 며칠은 안 하는 식으로라도! 

 

이렇게 최대한 집중력을 끌어올린 채 즐긴 여행이 끝나면, 여행의 행복은 거기서 끝일까? 아니다. 이 이후의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번 여행의, 그리고 다음 여행의 행복도가 달라질 수 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면 당시에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자세히 자신의 감정을 파고들어서 기록하면 좋다. 그래야 더 오래 남고, 더 행복한 여행으로 기억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여행의 기억들은 다음 여행 때 또 좋은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지표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왜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출발하기 전에 떠올렸던 그런 행복감을 즐길 수 없는지 깨달았다. 

 

우선 내가 여행 중에서 가장 좋았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나는 비영어권 국가의 스타벅스에서 되지도 않는 말을 써가며 주문을 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황당해하는 직원의 얼굴이 아직도 떠오르고, 그때 민망했던 감정도 떠오르지만, 커피 한 잔을 시켜 마셨다는 데에서 나름 충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마트에서 기본적인 재료를 사다가 음식을 해 먹었을 때, 혹은 도시락을 사 가지고 와서 먹었을 때였다. 

나는 여행지 속 사람들의 민낯을 보기를 좋아했던 거다.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상을 조금 더 깊숙이서, 가까이서 느껴 보고 싶었던 거다. 

 

공항에 도착해서 내가 마주친 것은 관광객들을 위해 잘 가꾸어진 낯이었다. 유명하다는 관광지나 맛집도 마찬가지다.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고, 별 어려움 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물론, 별 어려움 없이 관광지를 구경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배경 지식이 부족했기에 아무 생각 없이 둘러보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내가 나도 모르게 원했던 것을 얻지 못한 데에서 오는 불만족이, 여행에 대한 나의 기대감을 떨어뜨린 거다. 

 

책을 읽는 내내 단순히 이 책은 ‘여행’에 관련한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나의 성향을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고,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조금 더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해 음미하는 일도 필요하다. 

여행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때로는 기대감을 낮추는 식으로 변주를 주라는 말은, 하루하루를 똑같이 살고 있다고 느끼는 나에게 다른 식으로 적용이 될 수도 있다. 여행이 끝나고 나서 일기를 쓰거나 그날의 감상을 적는 것도 마찬가지다. 

 

생각해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김영하 작가가 여행 에세이 <여행의 이유>에서 말했던 것처럼 여행과 삶은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까.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라고. 

그 말처럼, <행복한 여행자로 사는 법>은 우리네 일상에서 겪는 것들과 많은 면이 닿아 있다. 


#행복한여행자로사는법 #쌤앤파커스 #나홀로여행 #여행책추천 #여행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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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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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이 책은 소설이 아닌 것 같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은 그 양상이 다양하고 충분히 많은 글을 소설 카테고리에 포함시킬 수 있다. 소설이 아니라고 느끼는 독자들은 아마 소설에서 보통 얻지 못하는 '불쾌감'을 얻었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면 그 불쾌감은 어디서 올까?

사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이 책이 어디가 소설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또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소설이 될 수 없다는 법은 없다. 그렇게 따지면 사람들의 고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소설, 만화 등이 똑같이 매도당해야 할 것이다.

최규석의 <송곳>은 다큐멘터리, 에세이 만화일까?

우리가 학창 시절에 그렇게 배웠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1920년대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사실주의 단편소설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소설이다. 그저 '사실적인' 소설일 뿐이다.


나는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서 기시감을 느낀다. 많은 독자들에게 사고 싶은 책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베스트셀러가 된 것일 거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이 리뷰에서 '내가 바로 그 김지영이다'라며 공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이 책의 수준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은 마치 소설 속에서 김지영 씨가 언급했던 '가사노동의 난이도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가사노동을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해 버린 것처럼 이 책을 아무것도 아닌 책으로 격하시키려는 사람들.

책이 많은 여성들에게 공감을 얻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눈감아 버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상황들에서 고개를 돌리고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해 버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반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반감이 드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나는 목소리를 잃어 버린 김지영 씨가 초반에 김은영 씨가 그랬던 것처럼 목소리를 내기를 바랐고,

고구마 같은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는 와중에 사이다 같은 해결책이나 상황이 나오기를 바랐다.

물론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이 책의 주요 인물이었던 김지영 씨를 통해서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아주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책의 주요 문제는 결국 해결되지 않은 채로 말이다.

거기서 불쾌감이 시작되었다.

그 불쾌감은 김지영 씨로 대표되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행복하지 않고 아직도 그런 환경에 놓여 있다는 데에서 비롯된 분노였다.

그런데 현실에서 행복하지 않은데 소설에서 행복하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때뿐인 헤피엔딩에 대한 기쁨일 뿐이다. 현실은 여전히 책의 결말과 더 가까우니까.


현실과 비슷하기 때문에 불쾌하다는 이유도 생각해 보았다.

그건 아마도 그 사회 문제가 결국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김지영 씨들에게 무심했던 나에게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이 시대의 김지영 씨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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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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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사에 다니는 조지는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직장도 있고, 집도 있고, 애인도 있다. 너무 평범해서 제발 무슨 일 좀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바랄 정도다. 그런 조지의 앞에 옛날 애인 리아나가 나타난다. 맥클레인이라는 자의 비서이자 애인으로 있으면서 그의 비리와 부정을 알게되었고,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돈 오백만달러를 훔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맥클레인이 저를 협박해오는 통에 결국 돈을 돌려주기로 결정했는데, 문제는 맥클레인을 직접 만나기 무섭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지에게 그 일을 부탁했고, 그 댓가로 백만달러를 지불해주기로 한다. 백만달러 때문은 아니고, 리아나에 대한 호의로 조지는 돈을 돌려주기로 한다.

 맥클레인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지는 리아나가 자신에게 진실만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를 협박한다는 도니 젠크스는 맥클레인의 밑에 있는 사립 탐정으로 리아나를 협박하는 도니와는 얼굴도 몸집도 다르다. 또, 맥클레인이 흑발 여성에게 금방 빠져든다는 사실을 알고 머리도 흑발로 염색한 채 맥클레인을 유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리아나에 대한 의혹만 품은 채 맥클레인과 헤어진 조지는 다음날 맥클레인이 사망하고 맥클레인의 다이아몬드가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모든 게 사실은 리아나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리아나는 조지에게 첫사랑이었다. 조지가 돈을 받지 않더라도 이 일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그건 순전히 리아나를 위한 마음 때문이었다. 여자친구가 있는 조지니, 리아나를 사랑해서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리아나와 육체적 관계를 맺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때문에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파헤치고, 리아나의 부탁을 들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리아나라는 인물이 대학교 때 저에게 어떤 여자친구였는지를 추억하면서 그 대학 때의 리아나를 위해 현재 이 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리아나에게 사실은 속은 것인데도 감싸주고, 리아나를 위해 이런저런 부탁을 들어주는 그는 어떻게 보면 정말 호구로 느껴진다. 이만큼 쉬운 남자가 어디 있나 싶다. 제 의지로 맥클레인에게 다녀온다고 하지만 리아나에게 끌려다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호구의 사랑이든, 첫사랑의 추억이라 끌려다닌 것이든, 어느 쪽이든 조지는 리아나에게 그의 마음을 뺏기고, 모든 걸 뺏겼다. 리아나 대신 맥클레인 살해 용의자로 올랐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낌없이 주는 사랑, 아낌없이 뺏는 사랑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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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의 행복 - Novel Engine POP
미아키 스가루 지음, 현정수 옮김, E9L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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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중에 <금요일>이라는 웹툰이 있었다. 지금은 완결이 났지만, 연재 당시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준 소재가 몇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수명을 판다는 것이었다. 그 웹툰은 미스터리 스릴러 쪽의 장르였기에, 수명을 사고팔았던 인물의 결과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이 소설도 띠지에 적힌 수명을 팔았다.’라는 문구 때문에 비슷한 내용일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따뜻한 배려를 다룬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주인공이 쿠스노키는 20대 초반 대학생으로, 10년 뒤에 만났을 때 애인이 없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애인이 되어주자는 소꿉친구 히메노의 말을 그대로 믿고 10년 동안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멀리했다. 가족과는 갈등을 빚어서 따로 독립을 한 그는, 재정난에 시달리다가 수명을 파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남은 30년의 수명을 각 1년당 1만엔씩, 30만엔에 팔아버린다. 이제 그에게 남은 생은 3개월이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타인을 해하는 허튼 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해 감시원이 붙는다. 쿠스노키에게는 그와 동갑으로 보이는 미야기라는 여성이 감시원으로 붙었다. 그녀는 과거의 몇 안 돼는 인물에게 연연하는 쿠스노키를 조금 차가운 눈빛으로 지켜본다. 쿠스노키는 그간 사람을 밀쳐내며 살아왔기에,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진정한 친구가 주변에 없었다. 심지어 소꿉친구였던 히메노는 자신이 곤란했을 때 도와주지 않은 그를 증오하며, 그의 앞에서 자살해버리는 계획도 세웠었다. 남은 3개월의 편안함과 행복을 주변의 인물에게서 찾으려던 생각을 버린 쿠스노키에게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존재가 있었다. 미야기였다.


미야기는 쿠스노키에게만 보이는 인물이다. 그녀는 어머님의 빚을 갚기 위해 시간을 팔았고, 그 대가로 감시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쿠스노키는, 그러나, 밖에서도 안에서도, 타인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미야기를 늘 상대해주었다. 미야기 밖에 남지 않은 쿠스노키는 그녀를 데리고 음식점을 찾고, 놀이공원을 찾았다. 그러는 사이 쿠스노키는 보이지 않는 여자친구를 가진 남자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그 중에는 미야기가 정말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쿠스노키의 남은 수명 30만엔이 아니라 30엔이었다. 미야기가 빚을 내서 30만엔으로 만들어준 것이었다. 미야기의 빚을 갚기 위해 쿠스노키는 남은 2달의 생을 팔아버린다. 미야기와 함께 지내면서 그동안 손을 놓았던 그림을 다시 손대게 되었고, 앞으로 2달간 그림만 그리면 후세에 영원히 남을 명예를 가질 수 있지만, 쿠스노키는 그 명예를 거부한다. 그에게 앞으로 남은 일생은 단 사흘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마찬가지로 3일을 남기고 수명을 팔아치운 미야기가 투명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나타난다.


제목은 3일간의 행복이지만 이 3일의 모습은 소설 속에서 마저 그리지 않는다. 그러나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들의 3일이 정말 행복하리란 걸 금방 상상할 수 있다. 죽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좌절을 주지 않는다. 그들이 선택한 길이기에. 그래서 그들은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 극단적으로. 30만엔으로 부풀려서 돈을 빌려준다던가, 그 돈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일일이 나눠준다던가 하는.


저자는 이들의 동행을 지나치게 아름답거나 지나치게 차갑게 묘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담담한 담백함이 오히려 이들의 진심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만든다.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야기에게 계속 말을 걸고, 손을 잡고 걷는 일은 쿠스노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죽을 몸, 이상한 별명이 붙는들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 아무렇지 않은 작은 행동 하나가 미야기에게는 큰 감동이었다. 작지만 소소한 배려가 점점 쌓여, 미야기가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사람들이 그 존재를 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설에서도 중간에 언급된 말인데,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과 기쁨은 온다. 이들은 큰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죽음을 코앞에 두었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작은 일에서도 행복을 찾는. 우리는 행복에 관한 말을 많이 들어왔다. 가난하지만 행복지수는 높다는 나라,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꼭 행복한 건 아니라는 통계 등.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작고 소소한 일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말. 이 책에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같다고 본다. 행복은 찾으려고 하면 내 일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작은 일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주제를 이야기로 상당히 잘 포장했다.


이 책은 웹소설로 연재되던 소설을 출판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웹소설은 웹툰 다음으로 등장한 매체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웹툰처럼 웹소설을 즐겨 읽지는 않는데, 웹툰은 장르가 다양한 데 비해, 웹소설은 로맨스라는 장르에 비교적 많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웹소설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 있었는데, 비록 한국 소설은 아니지만, 이 소설을 읽으니 웹소설도 괜찮은 매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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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시오리코 씨와 기묘한 손님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1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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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주인공인 ’, 다나카 고우라는 어렸을 적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할머니의 방에 들어가 책을 만졌다가, 할머니에게 호되게 혼난 적이 있다. 이 사건 이후로, 고우라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방을 치우던 중, 당시에 손을 댔던 책에 사인이 있는 것을 보고 가격을 감정하기 위해 비블리아 고서당으로 향한다. 고서당의 점장인 시노카와 시오리코는 책을 무척 좋아하는 인물로,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그녀는 할머니의 책을 감정하면서, 책에 적힌 사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밝혀냄은 물론 그 책에 얽힌 할머니의 비밀도 풀어낸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낡은 책에는 내용뿐 아니라 책 자체에도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 책에서 내내 나오는 말이며, 이 책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책 자체의 이야기를 통해, 책으로 벌어지는 수수께끼를 해결한다. 책 도둑을 잡고, 책을 팔려는 남편의 비밀을 밝혀내고, 책을 얻기 위해서 주인의 목숨도 위협하는 범인을 잡아내는 등, 책 한 권으로 풀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사건들이다. 명탐정은 아니지만 책에 관해서만은 거의 모르는 게 없는 고서당 점장 시노카와이기에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다.


오로지 책을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건, 기존에 봤던 탐정소설과는 다른, 일종의 미카미 엔만의 창의력이라 볼 수 있다. , 특히 오래된 고서적과 관련해서 언급되는 세부적인 부분은 이 소설의 디테일을 살려주며, 소설을 꽤 현실적이라고 느끼게 한다. 또한 내용이나 문체도 어렵지 않고 간결해서 쉽게, 그리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 세계최초의 장편소설이 일본에서 나왔다더니, 책에 관한 일본인들의 애정을 엿볼 수 있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고서당을 방문하는 인물들은 모두 책을 좋아한다. 한마디로 이들은 책덕후이다. 개인적으로 중고서점은 많이 들어보고 이곳저곳 가봤어도,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오래된 책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모이는 고서점 혹은 고서당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본 바가 없었다. 해리포터의 초판이 지금은 비싸게 팔린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있지만, 잘 보존되고 희귀한 책을 수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책을 아끼는 사람들의 세계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소설이라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나 그 이상을 느끼기는 어려운 책이다. 줄거리는 있지만, 흥미롭지는 않다. 책을 통해서 해결하는 수수께끼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사건이나 수수께끼가 기존의 다른 탐정류와는 달리 가볍다. 전반적으로 가벼운 건 좋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없었다. 독자를 책에 매료시키는 클라이막스 사건이 없다는 걸 저자도 알았는지 모르지만, 그 하나의 사건을 만들기 위해 고서당 점장의 목숨을 노리는 인물을 설정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책에 의존해서, 책으로만 사건을 해결하려다 보니, 목숨을 위협하는 범인도 큰 함정과 트릭 없이 잡을 수 있었다. 심지어 그 범인이 누구인지 점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가짜 책을 범인의 눈앞에서 불태움으로써 책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범인을 모르는 척 주인공의 도움을 받았을 뿐이다. 갈등이 부족한 위 전개는 독자로써 조금 맥이 빠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끝낼 때마다, 드디어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쾌감보다는 생각보다 시시한 이야기였다는 실망감을 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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