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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계승자 ㅣ 별의 계승자 1
제임스 P. 호건 지음, 이동진 옮김 / 아작 / 2016년 7월
평점 :

예전에 오멜라스에서 발간되었다가 절판된 그리고 이번에 아작 출판사에서 새롭게 다시 출간된 제임스 P. 호건의 <별의 계승자>를 읽었다. 어쩌면 SF팬들에게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아작 출판사는 구세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건 작가의 자이언츠 시리즈 5권을 모두 낼 예정이라고 하니 적잖이 기대가 된다. 그리고 그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자 제임스 P. 호건의 데뷔작이기도 한 <별의 계승자>를 읽었다.
인류에게 전쟁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고 더 이상 무기개발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되자 인류는 모든 자원과 열정을 온전하게 우주로 돌리게 된다. 소설의 개론에 해당하는 이 부분이야말로 개인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전쟁무기 혹은 핵개발 경쟁 같은 비효율적인 것에 자원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일까. 그런 최첨단 무기경쟁이 인류에게 티끌이나마 무슨 도움이 되었단 말인가.
어쨌든 영국 출신의 이론연구가이자 핵물리학자인 빅터 헌트 박사와 그의 동료인 엔지니어 롭 그레이는 메타다인 핵공학장비사 소속으로 물체를 절단하지 않고 내면을 투사할 수 있는 트라이매그니스코프(이하 스코프)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바로 이걸 계기로 헌트와 그레이는 달탐사에서 발견된 자그마치 5만년 전에 죽은 찰리와 운명적 조우를 하게 된다. 아, 프롤로그에서 코리엘과 고르다로 향하는 찰리에 대한 소개가 잠시 등장했던가. UN 우주군으로 대변되는 인류의 위대한 태양계 탐사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 우주탐험 과정에서 발견된 인류와 거의 유사한 찰리의 존재는 지구과학자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조금은 황당한 상상력으로 출발한 과학소설 <별의 계승자>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은 저자가 준비한 떡밥을 물고 충실하게 수행해낸다. 이른바 인류의 기원을 두고 열렬한 토론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막 우주탐험에 나선 현대 인류보다 5만년이나 앞선 기술력을 가진 인류와 평행진화를 한 유사인류가 있었단 말인가? 지구의 가장 유능한 전문가들이 모여 지식의 자웅을 겨루는 한판 대결이 벌어진다. 책임자 콜드웰은 우리의 빅터 헌트 박사야말로 선험이나 편견에 사로 잡히지 않고, 과학적 가설과 증명된 사실에만 의거한 연역적 방법으로 인류의 기원과 찰리 프로젝트로 알려지게 될 가니메데인에 대한 비밀을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로 생각하고 그를 적극 지원한다.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진 뒤, 인류의 공동개발이 지향해야 할 점에 대한 아이디어처럼 서로 각기 다른 분야에서 협업을 이루어 찰리 프로젝트를 풀어나가는 과정이야말로 <별의 계승자>에서 정말 저자가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투보병 출신 월인(月人) 찰리가 적대적 람비아인들과의 치열한 교전을 거치면서 남긴 일지를 해독하게 된 헌트 그룹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도대체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인류의 기원이 어디에서 출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우주를 가로 질러 월인의 고향으로 알려진 목성 부근의 미네르바에까지 진출하는 가운데 펼쳐지는 한편의 스페이스 오페라의 향연은 과연 황홀했다.
다만 소설의 후반에서 마련한 미네르바의 달이 행성 폭발로 이동해서 지구의 별이 되었다는 너무 멀리 나간 가설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점에서는 좀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에필로그 부분에서 모두가 원하는 월인이 지구에 존재했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가 친절하게 준비한 증거물은 이어지는 자이언트 시리즈를 위한 멋진 소품이었다고나 할까.
후기에 실린 역자의 저자 소개에서 보게 된 내용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말년의 제임스 P. 호건이 홀로코스트 부정주의에 동의하고 유사과학의 영역에 심취했다고 했던가. 어쩔 수 없이 미국 하위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타인에 대한 정복과 지배 그리고 폭력의 미화라는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싶다. 이렇게 멋진 스페이스 오페라를 만들어냈으면서도 우주개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인류는 평화로운 공존 대신 식민화를 원하고 있다는 설정에는 동의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소설에서 부족한 자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월인 세리오스와 람비아 세력이 벌이는 대결구도는 인류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유한한 자원이 고갈되는 순간, 지구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공존을 위한 대화와 타협 대신, 상대방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존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를 동원한 극한대결에 나선 월인들의 최후를 통해 배우는 게 하나도 없단 말인가. 그런 점에서 본다면 <별의 계승자> 역시 인류의 기원을 찾는 내적 탐구와 더불어 반전이라는 확실한 메시지의 상징처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