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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만년 살 것 같지? - 멸종위기 동식물이 당신에게 터놓는 속마음 만화에세이
녹색연합 지음, 박문영 만화 / 홍익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내가 사는 집 근처에 맹꽁이들의 서식처가 있다. 녀석들은 주로 밤에 활동하는지 선선한 여름밤 녀석들이 군거하는 곳을 거닐다 보면 맹꽁이들이 즐겁게 우는 소리가 아주 상쾌하게 들린다. 이번에 읽은 녹색연합에서 펴낸 <천년만년 살 것 같지?>에 바로 그 맹꽁이가 우리의 환경오염 정도를 알려주는 환경지표종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래도 우리 동에는 그나마 살만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에 관심이 많은 꼬맹이를 키우다 보니 아무래도 덩달아 주변 동물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보니 나도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 동물들을 좋아했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방법, 아마 녹색연합 분들이 보면 기겁을 하시겠지만,으로 그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꼬맹이 덕분에 과천에 있는 서울대공원에도 자주 갔었는데 갈 때마다 남방돌고래들의 수중공연을 보러 가곤 했었다. 남방돌고래들의 현란한 공연을 보면서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렇게 갇혀 있는 것보다 자연에서 뛰노는게 훨씬 좋을 텐데 하고 말이다. 하긴 그런 생각이 어디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걸까? 동물원에 갇혀 있는 사는 처지의 수많은 동물들도 마찬가지겠지. 인류가 개발해낸 발명품 중에 동물원 만큼 인류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도 드물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천년만년 살 것 같지?>에 실린 다양한 에세이들을 보면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육식을 줄이기 캠페인 같은 부분은 좀 불편했다. 채식주의자들의 생각에는 공감하는 바도 있지만, 자신들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건 좀 아니지 싶다. 사실 문제가 되는 건 현대에 개발된 공장식 축산이 문제지, 육식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방식으로 축산이 이루어지고, 좁은 케이지에 갇혀 살을 찌우고 비참하게 도살되는 방식을 문제 삼는 게 옳은 게 아닐까? 하긴 푸른 초장에서 뛰어 놀던 녀석들을 사려면 배나 비싼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게 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그 생각에 반대한다. 물론 그렇게 매일 같이 고기를 사 먹을 돈도 없긴 하지만.
지난 세기의 뛰어난 아인슈타인이 지적했듯이, 꿀벌이 멸종한다면 우리 인류도 4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이 왜 이렇게 나는 불안하게 느껴지는 걸까. 1년 전에 읽은 마야 룬데의 <벌들의 역사>는 지구별에 벌이나 나비가 멸종되면, 그들이 하던 수정이라는 중요한 작업을 인류가 직접 해야 한다는 비극을 그린 소설이었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이지만,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과일이나 모든 종류의 채소 그리고 곡식도 그들의 노고가 없다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소설에서 사람들이 인공 수정을 위해 과실수에 매달려 붓으로 직접 수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상상만 해도 대단한 노동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이나가키 에미코 씨의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를 읽어서 그런지 아무 생각 없이 일상에서 소비하는 전기나 잘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용기들에 대한 사용을 자제하고, 좀 더 재활용에 신경을 쓰자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좀 더 귀찮더라도 일회용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비닐 봉지 대신 에코백을 사용하고, 나무젓가락 보다는 쇠젓가락을 사용해야 하자는데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문제는 이상과 실천 사이의 괴리다. 다른 사람의 뭘 그렇게 까다롭게 사느냐는 핀잔보다 귀차니즘이 더 문제가 아닐까. 아울러 나 하나 아끼고 줄인다고 해서 대세에 무슨 영향이냐고 묻는다면? 아니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나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줄여 나간다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미래의 자연이 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나의 생명이 소중하다면, 같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들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