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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바다
이언 맥과이어 지음, 정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평점 :

얼어붙은 바다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을까? 이언 머과이어의 소설 <얼어붙은 바다>에서 포경선 볼런티어호에 탑승한 선원들은 고래잡이에 나선다. 최소한 얼어붙은 북빙양에는 고래가 살고 있다는 것이리라. 책을 읽어 보면, 고래와 바다표범 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욕망, 분노 그리고 채울 수 없는 갈급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책이 나오기 전부터 기존의 여러 채널을 통해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 다 알고 있던 터라, 독서는 확인사살에 가까웠다. 지금 읽기 시작한 책들이 하도 여러 권이라 좀 헷갈리지만 그래도 가장 읽고 싶었던 책부터 먼저 읽기로 했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항구도시 헐을 출발해서 그린란드로 가는 포경선 볼런티어 호에 탑승한 인간 군상들에 대한 스케치로 이언 머과이어 작가는 소설을 시작한다.
문제적 인간 하나, 그의 이름은 헨리 드랙스. 볼런티어 호의 작살수로 냉혈한 캐릭터의 주인공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 주로 폭력을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인간형이다. 문제적 인간 둘, 아일랜드 캐슬바 출신으로 열대의 나라 인도에서 세포이 전쟁을 겪고 본국으로 돌아온 퇴역 군의관 패트릭 섬너다. 보통 돈이 필요한 의대생들이나 탑승하는 선박의로 지원한 저의에 대해 모두가 궁금해 한다. 머지않아 들어나게 되지만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연금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난 신세다. 게다가 아편중독이라는 치명적인 약점까지 지니고 있다. 볼런티어호를 침몰시켜 보험금을 타내겠다는 음흉한 계획을 가진 선주 제이컵 백스터에게 고용된 섬너는 앞으로 그의 앞에 펼쳐질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지나친 낙관만 가진 채 볼런티어 호에 탑승을 결정한다. 책이나 읽고 글이나 좀 쓰면서 그 좋아하는 아편을 실컷 즐길 수 있는 유급휴가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해빙이 넘실거리는 북해 바다에서 볼런티어 호의 선원들은 잔혹한 바다표범 사냥에 나선다. 오로지 돈으로 환산되는 바다표범 가죽을 얻기 위해 성체와 새끼할 것 없이 뱃사람들은 잔혹하게 라이플과 곤봉을 휘둘렀다. 섬너는 동료들과 함께 바다표범 사냥 중에 사고로 해빙에 빠져 익사할 뻔한 위기도 겪지만 이등 항해사 미스터 블랙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자그마치 세 시간 동안이나 부빙에 갇혀 있다가 살아나다니, 정말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다. 물론 나중에 그에게 벌어지는 일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워밍업이라고나 할까.
바다표범 사냥에서 보여주는 선원들의 야만적 행위는 앞으로 벌어질 비극의 전조처럼 다가온다. 13세 소년 조지프 해너가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된 것이다. 북빙양에 외로이 떠있는 포경선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38명의 선원 중에 범인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마치 한 편의 스릴러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들기 시작한다. 능수능란한 작가 이언 머과이어는 이런 이야기 속에 주인공 패트릭 섬너에게 델리에서 있었던 과거도 슬쩍 끼어 넣는다. 인도 델리에서 벌어진 세포이 전쟁 와중에, 보물 약탈에 눈이 멀어 수석군의관 코빈과 작당해서 보물찾기에 나섰다가 동료들은 모두 적군의 매복에 걸려 죽고 자신도 부상당해 구사일생으로 귀환하는데 성공한다. 문제는 자신의 상관 코빈이 의료현장에서 이탈한 섬너의 구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불명예제대하게 된 섬너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그게 섬너가 볼런티어호에 승선하게 된 진짜 이유였다.
배신과 음모가 휘몰아치는 세상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전직 군의관 섬너에게 포경선에서 이루어지는 순수한 노동이야말로 적격이었다. 섬너는 여가 시간에는 <일리아드>를 읽었다. 이언 머과이어 작가는 철저한 고증으로 마치 눈 앞에서 거친 고래잡이를 보는 듯한 리포트와 세포이 전쟁 당시의 처절한 현장을 시각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작가가 준비한 이야기들은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술술 돌아간다. 결국 진짜 살인범이자 남색자로 밝혀진 헨리 드랙스의 난동으로 선장 브라운리가 사망하고, 일등 항해사 마이클 캐번디시가 볼런티어호의 지휘를 맡게 된다. 이어지는 난파와 조난의 과정이 무서운 속도로 전개된다. 자신의 생명줄 같았던 아편이 든 짐 상자를 잃어버린 섬너는 금단증상에 시달리며 눈보라가 치는 혹한에서 결국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독자는 어쩌면 양심적 의사 섬너의 생환을 적극적으로 응원할 지도 모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 역시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는 무심한 사나이다. 그와 대척점에 놓여 있는 헨리 드랙스와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확실히 이언 머과이어의 소설 <얼어붙은 바다>는 충분히 흥미롭고 읽어볼 만한 책이다. 특히 바다표범과 고래사냥에 나선 포경업자들에 대한 뛰어난 묘사와 세포이 전쟁에서 보물약탈에 나섰다가 부상을 입고 가까스로 살아남는데 성공한 섬너의 이야기는 독보적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고래잡이 부분에서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아우라를 자랑하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한 독일 출신 작살수 오토와의 대화도 멋졌다. 선은 악의 부재한 결과라는 패러프레이즈는 또 어떤가. 과연 패트릭 섬너에게 선(virtue)을 적용시킬 수 있을까? 그냥 전형적인 제국주의 시절 지식인의 양심적 모습이 아닐까.
제국주의 자본가들에게 고래/바다표험 혹은 인도의 민중들은 오로지 착취의 대상으로만 비칠 따름이다. 내가 아닌 피아를 모두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그런 시선이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분명 살인적 바다를 상대하는 선원들의 입이 상대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필요이상으로 거친 언어들(아마 번역 와중에 순화되지 않았을까 싶다)이 쓰인 점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아마 어쩌면 그런 점들도 현대 독자들을 고려해서 이언 머과이어가 기술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얼어붙은 바다>는 맨부커상 최종심에 오르고 뉴욕타임즈에서 그해의 베스트 10에 올릴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라는 사실은 인정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재밌기도 하다. 만사를 제쳐 두고 책읽기를 마치지 않으면 다른 걸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