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르나소스 이동서점
크리스토퍼 몰리 지음, 김인수 옮김 / 마인드큐브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지금으로부터 백년 전에 발표된 크리스토퍼 몰리 씨의 <파르나소소 이동서점>을 읽었다. 분량이 생각보다 적고 내용도 무척 재밌어서 주말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내친 김에 후속작인 <유령서점>도 읽기 시작했다. 좋은 책과의 만남, 언제나 대환영이다.
배경은 20세기 초반, 크리스토퍼 몰리의 첫 번째 소설 <파르나소스 이동서점>은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에 살던 헬렌 맥길 양(무려 39살!)의 모험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녀의 열 살 많은 오빠 앤드루 맥길은 귀향해서 농사를 짓다가 발표한 소설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오빠를 따라 귀향해서 지난 15년 동안 자그마치 육천 덩이의 빵을 구으며 오빠를 보필한 헬렌 양에게 일생일대의 모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페가소스가 끄는 “파르나소소 이동서점”을 단돈 400달러(!!!)에 인수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그동안 포드 자동차를 사겠노라고 고이 모아온 돈을 오빠에게 더 이상 헛된 망상을 안겨 주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구입하기에 이른다.
붉은 수염의 대머리 로저 미플린 교수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오락거리라고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담긴 책들을 도심에 사는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책을 접할 수 없는 벽촌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책을 컨설팅해주는 독서 치료사 같은 역할을 하며 살고 있다. 오랜 방랑 생활에 지친 그는 책 좋아하기로 소문난 앤드루 맥길에게 이동서점을 통째로 맡기고 석양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는 브루클린으로 돌아가서 책을 집필할 계획이다.
가정교사로 일하며 한때 꿈꾸는 덩치 큰 처녀였던 헬렌 양과 대머리 신사 미플린 씨의 기묘한 조합은 의외로 신선한 재미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물론 그 둘 사이에 며칠 사이에 싹트는 로맨스도 한 몫 단단히 한다. 수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자기 것으로 체화시킨 미플린 씨는 어떤 상황, 그 누구에게라도 책을 소개하고 팔 수 있는 뛰어난 독서 행상인으로서의 능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정말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의 하나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싶어하는 독자에게 아직 그 수준이 되지 않았다며 뜯어 말리는 시퀀스였다.
자신의 부엌데기 헬렌의 도주 사실을 알게 된 오빠 앤드루는 그들을 찾아 나서고, 자기 여동생을 꼬드겨 사기쳤다고 생각한 나머지 미플린 씨와 주먹다짐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다. 한편, 홀로 이동서점을 이끌고 15년 만에 책판매 여행에 나선 헬렌 양도 부랑자들에게 마차를 탈취당할 뻔 하지만 시기적절하게 등장한 미플린 씨의 도움으로 책마차도 되찾고, 서로에 대한 사랑도 확인하게 되더라는 뭐 그런 식의 전개가 이어진다.
아마 <파르나소소 이동서점>이 줄창 책 이야기만 늘어놓았다면,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리라.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크리스토퍼 몰리는 우리네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책과 이동서점이라는 우리에게는 정말 생소한 소재를 가지고 흥미롭고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문득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21세기에도 책마차라는 컨셉트가 먹힐까라고. 볼티모어 같은 도시에서는 지금도 마차에 과일을 싣고 다니면서 파는 행상이 있다고 하는데 책이라고 안될까.
얼마 전, 도서정가제에 대한 온라인 토론을 기사로 접한 적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책의 가격이 저렴하며, 최소한 50%는 올려야 한다는 주장에 기겁했다. 토론을 주도하는 이들이 어디까지나 출판업자들이다 보니 너무나 그들 입장만 외치는 게 아닐까. 왜 우리 저렴한 책과 계속해서 만나고 싶은 독자들의 의견은 아예 무시되는 걸까? 책의 가격 산정에는 마케팅 비용이 상당 부분 차지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로저 미플린 씨처럼 책마차를 끌고 다니면서 서적 소비자와 만나는 대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마케팅 방식이 소품종소량생산 시대에 걸맞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걸까. 물론 로저 미플린 교수 시절의 책보다 더 재미있는 아이템들이 많다는 점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을 책 읽게 만들 순 없으니, 책사는 이들에게 더 뜯어내자는 식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시대를 뛰어 넘는 책의 가치에 대한 크리스토퍼 몰리 씨의 생각이 담긴 소설 <파르나소스 이동서점>은 훌륭했다. 책들이 꼴랑 몇 장의 종이와 몇 그램의 잉크로만 구성된 건 아니니까 말이다. 다만 그 가치를 어떻게 매기느냐는 여전히 논쟁 중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