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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
오브리 파월 지음, 김경진 옮김 / 그책 / 2017년 12월
평점 :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예스, 제니시스, 피터 개브리엘, 블랙 사배스, 10CC...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풍미했던 한자락 하는 아티스트들의 앨범 커버 작업을 도맡다 시피 한 그래픽 디자인 그룹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그책 출판사에서 나온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의 저자 오브리 “포” 파월이 속한 힙노시스 프로젝트였다.
아마 디지털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세대들에게는 바이널 레코드란 말도 생소할 것이다. 나는 어쩌면 바이널 시대의 끝자락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어릴 적 바이널 레코드를 사모을 적에는 두 장에 오천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카세트 테이프도 있었는데,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긴 했지만 바이널 레코드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 아우라에는 도저히 필적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전에는 에잇 트랙이라는 나는 보지도 못한 음악 미디엄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상업예술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창작이라는 활동에 너무 고상한 이미지가 있어서 그럴까. 왠지 돈을 받고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가 예술이라기 보다 거래에 가깝지 않나 하는 그런 편견이 배어 있는 모양이다. 사실 힙노시스 프로젝트의 일원들도 모두 돈을 받고 일한 게 아니었던가. 아무리 그래픽 디자인 계의 주술사라고 포장되어 있지만, 계좌에 돈이 꽂히지 않으면 아이디어가 튀어 나오지 않는다는 걸까. 하지만 입금이 되고 나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앨범 커버 씬에서 열심이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예술과 상업의 교묘한 줄타기 정도라고 해두자.

당대 최고의 밴드라고 할 수 있는 비틀즈나 롤링스톤즈와는 작업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 장도 없는 걸 보면 말이다. 대신 실험적인 싸이키델릭 음악으로 승부를 걸었던 핑크 플로이드의 저 유명한 <The Dark Side of the Moon> 같이 걸작 앨범 커버를 맡기도 했다. 음반회사에서 질색을 했겠지만 밴드 이름도 그리고 앨범 제목도 달지 않은 커버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는 예술가들의 곤조를 엿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아티스트로서의 자존감의 발로라고 표현해야 할까. 핑크 플로이드의 대표작의 커버는 말할 것도 없지만, 양말을 입에 문 커버도 재치가 넘치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앨범 커버의 비주얼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서 결국 유튜브를 돌려서 해당 앨범의 노래들도 찾아서 들어 봤다. 29세의 나이로 글램록 계의 신화가 된 티라노사우르스 렉스의 리더 마크 볼란의 <Get In On>도 들어 봤다. “You're dirty sweet and you're my girl” 뭐 이런 가사가 등장하는데 그것 참! 당대 그래픽 디자인을 주도했던 이들답게 소프트 에지 기법으로 만든 마크 볼란의 <Electric Warrior>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힙노시스 집단이 어떻게 보면 상업집단이긴 하지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비주얼로 만드는데는 일가견이 있었던 모양이다. 음악가들이 음악으로 자신들이 세상에 하고 싶은 메시지를 던졌다면, 그 음악을 매개로 힙노시스 집단은 이미지를 만들어 세상에 내보냈다. 한동안 비주얼의 압도적인 권력이 세상을 지배했다면, 4차혁명의 시대에는 다시 오디오의 시대로 환원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렇게 세상은 돌고 도는 모양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도 나왔던 10CC의 <I'm Not in Love>의 오리지널이 6분이 넘는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그동안 싱글 버전만 듣다가 오리지널을 들으니 기분이 새로웠다. 약간 촌티가 나긴 했지만 홀리스의 히트곡 <Long Cool Woman (In A Black Dress)>도 일부러 찾아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CD도 사라져 버린 디지털 음원 시대에 앨범 커버라는 이미지가 갖는 중요성은 아무래도 반세기 전의 그것과 비교해서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앨범 커버는 손 안에 쏙 들어오는 모바일 폰에 뜨는 디지털 음원이 어디서 알려 주는 조그만 이미지에 불과하지 않은가. 요즘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시절의 이야기일 것이고, 나같은 옛날 사람에겐 추억과 향수 그리고 유튜브로 그들의 음악을 찾아보게 만드는 원동력을 제공해 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