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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패리시 부인 ㅣ 미드나잇 스릴러
리브 콘스탄틴 지음, 박지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정말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탐 리플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가난한 청년 탐 리플 리가 그린리프의 신분을 얻어 비상하다가 추락해 버리는. 아니 소설에서는 완전범죄였던가. <마지막 패리시 부인>의 콘스탄틴 자매는 리플리를 전범으로 한 앰버 패터슨이라는 매력적인 팜므 파탈을 재창조해냈다. 미주리 시골 마을 세탁소집 딸 출신의 앰버는 리플리를 능가하는 능력과 집요함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캐릭터다. 다만 여기서 발생하게 되는 심각한 문제는 그녀가 공략대상으로 삼은 남자가 유부남으로 이미 행복해 보이는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훈남 중의 훈남 잭슨 패리시라는 점이다.
모든 일에는 시간과 끝을 알 수 없는 노력이 드는 법이다. 소설의 첫 번째 파트는 팜므 파탈 앰버 패터슨의 시각으로 시작한다. 앰버는 치밀한 사전조사로 낭포성 섬유증으로 사랑하는 동생 줄리를 잃은 대프니 패리시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한다. 그저 친한 친구로서? 천만에 대프니가 가진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위험한 도박에 나선 것이다. 자신의 불타는 야망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은 가차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 붙인다. 그렇게 해서 버니 니콜스와 배틀리 부인을 멋지게 제거한다. 26세의 젊은 앰버는 미주리에서 무언가 불미스러운 일을 뒤로 하고 성공을 쫓아 뉴욕으로 왔는데, 어떤 점에서 본다면 그녀가 벌이는 게임은 무척이나 위험해 보인다. 그러니까 밑바닥에서 성공한 잭슨의 케이스를 거치지 않고, 오로지 부유한 사람들이 이미 축적해 놓은 것을 얄팍한 계획으로 얻겠다는 것이 그녀의 속셈이 아니었던가. 그런 점에서 대프니의 곁에서 끊임없이 경고를 날리는 메러디스의 신중함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사실 잃을 게 많은 이들이 항상 더 신중한 법이고, 삶에 보이지 않는 위험 요소들을 제거하는데 열성적이지 않은가.
콘스탄틴 자매는 미주리 시골 마을에서 자라면서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낸 어떻게 보면 빤한 캐릭터 앰버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부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들을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들처럼 그렇게 콕콕 집어내는지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필력을 보여준다. 강렬한 짤막한 전개를 바탕으로, 그야말로 널뛰는 듯한 감정의 소유자 앰버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훌륭하게 통제하면서 패리시 가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장면에서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 정도 노력이라면 자력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그레그라는 준수한 청년도 자신에게 끝없이 구애를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앰버의 야망은 그레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컸고, 결정적으로 앰버는 패리시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
대프니 패리시는 앰버가 생각했던 것처럼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앰버는 오로지 잭슨을 유혹해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 때문에 다른 위험요소들은 볼 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2장에서 대프니는 모두에게 완벽한 남편 잭슨이 사실은 공감능력을 상실한 소시오패스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쇼였던 것이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실 뻔한 대프니의 아버지를 구하는 장면은 오로지 대프니와 결혼하기 위한 가식적인 행동이었다. 자녀들은 모름지기 고상한 프랑스 어를 구사해야 하고,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같은 고전을 즐겨 읽는 사람도 잭슨 같은 소시오패스일 수도 있다는 생강이 순간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결혼 후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소시오패스 잭슨은 대프니에게 성적 학대는 물론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그녀의 삶을 옥죄오기 시작한다. 과연 앰버 패터슨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와 결혼하기 위해 그렇게 몸부림을 쳤을까 싶을 정도였다. 내것이 아닌 타인의 것을 탐내는 이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게 아닐까.
교묘한 사기꾼이자 위장술의 대가 앰버는 자신이 언제까지나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유하고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을 지닌 잭슨이나 대프니가 자신의 진짜 정체를 영영 모를 거라고 오판했던 점이 그녀가 몰락하게 되는 결정적 원인이었다. 성공에 매진하는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지점을 작가들은 예리하게 파고 들었다. 대프니의 진짜 친구 메러디스는 그녀에게 경고장을 발부했고, 소시오패스 남편에게서 탈출할 기회를 엿보던 대프니는 절호의 찬스라고 판단하고 즉각 행동에 착수했다.
정신없이 몰입해서 소설을 읽다가 문득 곧 이 소설도 영화화 되겠구나, 어쩌면 콘스탄틴 자매들은 그것까지 고려해서 소설을 집필하지 않았나 하는 상상이 됐다. 다만, 어떻게 보면 너무 빤한 이야기를 영상화하는 장면은 또 다른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되기도 했다. 소설이 주는 문학적 가치나 고유한 아우라 같은 것은 제외하고, 순전히 재미라는 점에서 리브 콘스탄틴의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정말 재밌는 소설이었다. 개인적 상상이긴 하지만, 잭슨이 다시 대프니에게 처절한 복수에 나서는 후속편은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