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들, 자살하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8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 옮김 / 민음사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선뜻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지난 24년 동안 단 3편의 소설만 발표하면서 두 번째 작품으로는 퓰리처상까지 받아낸 미국 출신 그리스계 제프리 유제디나스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다. 다만, 그의 데뷔작 <처녀들 자살하다>의 주제가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즈번 가의 다섯 자매들의 죽음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라니. 하지만 서가 정리를 하다가 문득 그 책이 눈에 들어왔고, 마침 가지고 있던 영화도 잠시 돌려 보니(공교롭게도 트립 폰테인이 럭스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었다) 원작 소설에 대한 호기심이 불처럼 일었다. 그래서 바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과 만나게 되는 이유도 참으로 가지가지다.

 

소설 <처녀들, 자살하다>는 리즈번 가의 마지막 딸 메리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사실 소설은 죽음에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인근 웨인이라는 가상의 도시에 리즈번 가의 다섯 자매가 살고 있었다. 프람 댄스 파티도 끝난 6월의 어느 날, 리스번 가의 막내딸 서실리아가 고대 로마인들의 자살 방법을 골라 자살을 시도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죽음이란 18세기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사안인 줄 알았던 웨인 사람들에게 서설리아의 자살 시도는 그야말로 충격 자체였다. 1970년대 경찰국가 미국의 슈퍼파워가 전 세계를 압도하던 시절, 소녀의 자살 시도는 어쩌면 겉으로 보기에 순수하고 무한한 번영을 구가할 줄 알았던 미국 사회가 앞으로 몰락할 것이라는 하나의 징후가 아니었을까.

 

리즈번 부부는 부랴부랴 이제 곧 사교계에 데뷔할 딸들을 위해 파티를 준비한다. 어렵사리 준비한 파티가 결국 불상사로 끝났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유제니다스 소설의 특이한 점 중의 하나는 소설의 내레이터가 리즈번 가의 주변을 맴돌던 우리들(꼬마 소년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십대 소년들의 감수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대로, ‘우리들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진술한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가다 보면, 왜 리스번 가의 소녀들은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가라는 궁극적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서 소년에서 청년 그러니까 성인이 되어가는 과도기 과정에 대한 상세한 르포르타쥬에 도달한다.

 

그들의 눈에 리스번 가의 다섯 소녀들은 그야말로 판타지 그 자체였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소년들의 시선은 집중된다. 막내 서실리아를 잃고 난 뒤, 비극으로 치닫는 13개월 간의 리포트는 그야말로 생생하다. 그 와중에 럭스 리즈번은 웨인 최고의 미남자 트립 폰테인과 사랑에 빠진다. 당연한 수순이었을까. 어느 소설에서나 등장하는 선남선녀의 만남, 영화에서 아버지 리즈번 씨를 제외하고는 금남의 집이었던 리즈번 가에 도착해서 어리둥절해 하던 트립 폰테인 역을 맡은 자쉬 하트넷의 어린 시절이 풋풋하게 다가왔다. 집에 그만 가라는 리즈번 씨의 말에 고분고분하게 밖으로 나온 트립의 차에 뛰어 들어 느닷없이 키스를 퍼붓는 럭스 리즈번(커스틴 던스트 분)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댄스파티에서 위조한 신분증으로 산 복숭아 슈냅스를 나눠 마시는 장면은 또 어떤가. 그렇게 딱 세 장면을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영화의 분위기를 잡아낼 수가 있었다.

 

아직 오일쇼크, 대량해고와 지역 경제의 몰락이 시작되지 않았던 미국 중서부를 배경으로 한 <처녀들, 자살하다>는 미국의 호시절을 그리고 있다. 동네에 별다른 이슈가 없기에, 13세 소녀 서실리아의 자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지역 주민들은 리즈번 가에 온갖 종류의 꽃들을 보내고, 직접 방문해서 가족을 위로하려고 시도해 보지만 별무소용이다. 우리 소년들 역시 마찬가지다. 정의할 수 없는 그런 아름다움을 지닌 리즈번 소녀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을 시도해 보지만, 그녀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다. 그리고 서실리아 죽음의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는 미제 사건으로 남고 만다.

 

유제니다스는 충격적인 서두로 소설을 시작하지만, 두 번째 충격에 도달하기까지 비교적 순탄한 서사 구조를 유지한다. 그가 그리는 소년 소녀들은 운전면허를 따고, 몰래 손에 넣은 그들에게는 금단의 열매나 다름없는 복숭아 슈냅스를 마시고, 담배를 피며 록음악을 듣는다. 아, 그리고 보니 리즈번 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었던가. 교회 매장을 위해 서실리아의 죽음도 ‘사고사’로 뒤바뀌었다. 실제를 위해 진실이 바뀌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다섯 소년들이 넘실대는 리즈번 가는 소년들에게 어쩌면 환상의 할렘처럼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은 아버지 리즈번 씨가 딸들이 사용하는 생리대를 사기 위해 가게를 들락거려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실리아의 죽음과 댄스 파티에 갔던 럭스의 일탈 때문에 그들에게 외출금지령이 내리면서 리즈번 가는 그야말로 쇠락하기 시작한다. 마치 잘 나가던 세계 최강국 미국 사회와 경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왜 그렇게 억압적인 환경에서 리즈번 가의 딸들은 내가 최근에 읽은 <더 글라스 캐슬>의 저넷 월스처럼 탈출을 감행하지 못했던 걸까? 그들의 마지막 선택은 죽음으로의 탈출이었다. 우리 소년들은 그녀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서 갖은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차량까지 준비해서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까지 가주겠다는 각오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런 과정 속에서 그들 스스로 소년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소설의 어디선가 읽었던 “사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라니. 아, 너무 염세주의였던가.

 

이제 원작소설을 다 읽었으니, 영화를 볼 차례다. 지난 밀레니엄의 끝무렵인 1999년에 발표된 영화는 우리나라에 <처녀 자살 소동>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영화를 본격적으로 보기 전에 너무 궁금해서 유튜브 클립을 찾아보니, 우리 소년들과 리즈번 가의 남은 네 소녀들이 서로 전화선으로 바이널 레코드 음악을 들려주는 장면이 나왔다. 아, 70년대의 낭만이구나. 모바일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클래식컬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캐롤 킹이 부르는 “So Far Away", 구닥다리 노래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럽고 아름답구나.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구나. 원작소설과 영화의 만남,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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