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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위화 작가의 <형제>를 읽고 나서 문득 서가게 꽂혀 있던 <인생>에 눈길이 갔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에라 모르겠다.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읽다 보니 소설의 주인공 푸구이의 인생유전이 어째 새롭지가 않다. 좀 더 읽어볼까? 아하 예전에 읽은 책이로구나. 그런데 읽고 나서 리뷰를 쓰지 않았구나. <허삼관 매혈기>처럼 말이다. 순식간에 절반을 읽었다.
100묘 정도의 자산가 쉬씨 집안 푸구이는 도박으로 그 많던 재산을 모두 날려 먹었다. 그의 아버지도 당대에 원래 가진 재산의 절반 정도를 해먹었다고 하는데, 그 아들 녀석도 청출어람 청어람인 모양이다, 물론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세 좋던 집안이 몰락하는 건 순식간이구나. 그나마 집안이 몰락하기 전 잘 나가는 미곡상 천씨 집안 출신 자전을 아내로 받아들여 결혼해서 사랑스러운 딸 펑샤도 출산한다. 아들 유칭을 가진 상황에서 도박 빚으로 지주 계급에서 일순간에 도박사 룽얼의 소작농이 된 푸구이는 평생 하지 않던 밭일을 하느라 손발이 쉴 틈이 없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병으로 쓰러져 성중으로 의원을 모시러 가던 중에 국민당군에 징집되어 공산군과 국공내전에 휘말리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 푸구이가 역사의 순간에 투입되는 순간이다.
무작위로 사정도 안 봐주고 사람들을 강제로 징집해서 내전에 나선 장제스의 부패한 국민당군이 전쟁에 승리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해방군에게 포위되어 공중지원 만으로 연명해 가던 오합지졸 국민당군 병사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생쌀과 다빙을 만나처럼 여긴다. 결국 공산군의 맹렬한 공격 앞에 포로가 된 푸구이는 만터우와 귀향에 필요한 노잣돈까지 받아 자전과 식구들이 기다리는 고향에 돌아온다. 푸구이가 징집되어 전장을 떠도는 사이에 노모는 돌아가셨고, 몰락한 가세는 도무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가난의 질곡 속에 푸구이 가정은 고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인간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푸구이의 땅과 집을 빼앗아 떵떵거리던 도박사 룽얼은 공산당이 실시한 토지개혁의 열풍 속에 악질지주로 분류되어 총살되기에 이른다. 어쩌면 푸구이가 계속해서 지주로 살았더라면 룽얼의 꼴이 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푸구이 가정의 비극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이미 딸 펑샤는 열병을 앓아 벙어리가 되었고, 아들 유칭의 교육을 위해 13살 먹은 펑샤를 다른 집에 보내 더부살이를 시키기도 했다. 대약진운동 시절을 맞아 집집마다 솥단지를 부수고, 인민공사에서 노동하고 먹는 집단체제가 도입됐다. 원시적인 토법고로로 강철생산을 독려하는 우스운 장면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수백 년에 걸쳐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이룩된 서방 선진세계를 단기간에 따라 잡겠다는 독재자의 무리한 발상은 처절한 실패로 귀결되고, 대규모 기근까지 발생하면서 역대급 기아가 뒤따른다. 어머니 자전은 영양부족으로 구루병에 걸린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시대의 비극을 거치는 동안 푸구이 가정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난다.
이 책을 처음 읽고 나서 왜 리뷰를 쓰지 못했는지 두 번째 읽은 후에야 알게 됐다. 푸구이이라는 개인이 짊어진 비극적 삶의 무게가 오롯하게 감정적으로 전달되어 글로 체화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혁명으로 모든 계급이 타파되고, 공평한 사회가 되었지만 중국 인민들의 삶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경험이 일천한 공산당 지도자들이 벌인 계획경제의 폭주로 대규모 기아자가 발생했고, 지주들이 사라진 자리는 당간부들이 차지했다. 그 와중에 푸구이 같은 라오바이싱들은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어린 아들 쉬유칭은 현장 아내에게 수혈하다가 심장이 멎었다. 역설적이게도 유칭의 피를 수혈받은 현장의 아내는 바로 해방전쟁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춘성이었다. 다른 작품 <허삼관 매혈기>에서도 주인공 허삼관은 매혈로 삶의 고달픈 순간들을 돌파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생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피[血]에 대한 위화 작가의 집념이라고나 할까. 한편, 춘성 역시 문화대혁명 기간에 홍위병들의 지독한 폭력에 시달리다가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펑샤는 쿠건을 낳다가 죽었으며, 사위 완얼시 역시 사고로 죽었다. 마지막 남은 쿠건 역시 푸구이가 삶아 준 콩을 먹다가 어이 없이 죽고 말았다.
무수히 이어지는 죽음의 연대기를 목격한, 홀로 남은 푸구이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푸구이가 사랑하는 아내 자전은 죽으면서 푸구이가 자신을 묻어 줄 거라며 행복한 미소를 짓지 않았던가. 쉬씨 집안사람들이 느끼는 짧은 행복에 비해 숙명적 죽음으로 빚어진 고통은 영속적이다. 떠난 이는 말이 없지만, 산 자는 삶의 고통을 지고 나가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위화 작가는 돌아온 탕아 푸구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중국 인민들의 삶을 소설로 포착해냈다. <인생>에서는 아직 개혁개방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될, 현대 중국의 부조리한 면모를 그 누구보다 잘 잡아낸 위화 작가의 문학적 항해를 열렬하게 응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