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
루스 호건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루스 호건이라는 처음 들어 보는 영국 베드포드 출신의 작가의 책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를 읽었다. 인터넷으로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해 봤지만 그다지 쓸모 있는 정보들은 구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대략적인 나이도, 다른 작품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다. 책 표지에 나와 있는 대로 대학에서 영문학과 희곡을 전공했고 시청 공무원 생활도 좀 하다가 5년 전에 암 진단을 받아 애니 레녹스 스타일의 헤어를 하고 있다는 점 정도. 책을 다 읽고 나니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동했지만 프라이버시 이슈 때문인지 암튼 그 정도였다.

 

소설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고질적인 까치라고 스스로 명명한 그녀의 특징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우선 은둔작가 앤서니 퍼듀와 그의 충실한 비서로 활동하게 되는 로라가 등장한다. 앤서니는 아주 오래 전 정말 사랑하는 테레즈라는 아가씨를 비극적으로 잃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잡동사니 분실물로 가득찬 동물원 같은 유실물들을 보관하고 있다. 자신의 생의 끝이 가까워 왔음을 짐작한 성자 앤서니는 남편 빈스와의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는 로라에게 평생 돈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을 만한 유산과 자신이 그동안 모은 유실물들을 주인들에게 찾아 주라는, 그리고 부서진 심장을 고쳐 주라는 부탁을 남겼던가.

 

가정부 같은 존재에게 자신의 막대한 유산을 남긴 스캔들이야말로 동네 호사가 아주머니들의 입담에 오르기 좋을 법한 그런 소재가 아니었던가. 뒤에서 자신의 험담을 해대는 그들에게 쑥맥 같은 로라가 던진 한 방은 이 소설에서 가장 통쾌하고 유쾌한 장면 중의 하나였다. 로라의 모험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이웃집 소녀 선샤인과 정원사 프레디까지 합류해서 다채로운 이야기을 이끌어 낸다.

 

또 하나의 이야기에는 유니스와 바머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출판업자 바머는 게이다. 로라에 버금갈 정도로 성실하고 사람 좋은 유니스는 게이 고용주와 진실한 우정을 쌓아 나간다. 그리고 보니 소설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에는 일정한 분량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지닌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앞서 언급한 로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등장해서 자신을 유혹한 빈스를 백마탄 왕자님이라고 생각했고, 세상 경험 없는 유니스 역시 마찬가지다. 바머의 여동생 포샤 역시 능력자 오빠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전을 필사하다가 결국 포스트모던한 스타일의 소설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한다. 물론 소설에서 긍정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다운증후군 소녀 선샤인도 예외는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현자의 말을 누가 듣던가? 유령 같은 존재 테레즈의 심술에 시달리던 로라에게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역할 역시 선샤인이다. 이런 모든 것들을 성사 앤서니는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루스 호건 작가의 플롯은 거의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소설의 말미에 정교하게 준비되어 있다. 사실 소공녀 같은 스타일의 초반 전개가 몰입에 방해가 된 것도 사실이다. 로라와 프레디의 로맨틱 핑퐁게임 역시 마찬가지고. 유령 같은 존재로 변신한 테레즈의 방해도 이걸 마술적 리얼리즘의 현현으로 받아 들여야 하나 싶기도 했다. 성자 앤서니가 수집한 유실물들을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법으로 인터넷 웹사이트를 선택한 것도 어쩌면 진부하다고나 할까. 그렇게 최첨단 기술을 도입할 거라면 차라리 요즘 사람들에게 대유행인 인스타그램을 등장시키는 건 어땠을까. 서로 엇갈려 보이는 이야기를 한 접점으로 모이게 유도해서 대미를 장식하는 루스 호건 작가의 기술은 정말 탁월했노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가는 거지 뭐.

 

어쩌면 가슴 훈훈한 베드타임 스토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정보를 좀 얻어 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으니 온전하게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로만 판단할 수밖에. 다소 신파가 섞여 있긴 하지만 완독하고 나면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초반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감안해서 읽으면 도움이 될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