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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평점 :
올해 존 버저 작가가 돌아가셨다고는 소식을 듣고 나서 부지런히 그가 남긴 책들을 처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무려 9년 전에 받은 책도 있었다. <제 7의 인간>, 진작에 다 읽었는데 미처 리뷰를 작성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한 번 더 읽어야지 싶다. 1월에 읽기 시작한 존 버저의 소설 <A가 X에게>을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그동안 43권의 책을 읽으면서도 얼마 되지 않는 분량의 서간소설을 왜 빨리 읽지 못했던 걸까.
한편으로는 국내에 출간된 그의 책들을 모조리 다 읽어 버리면 아쉽지 않나 하는 노파심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럴 걱정은 없을 것 같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그의 책들이 연달아 출간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걸 걱정도 팔자라고 한다나.
언제나 그렇지만 서설이 길었다. 소설 <A가 X에게>는 테러 조직 구성 혐의로 이중종신형을 선고 받아 감옥에 살고 있는 남자 사비에르와 그의 정신적 동지이자 연인인 아이다가 서로 교환한 세 뭉치의 편지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다. 감옥 밖 세상에서 약제사로 일하는 아이다가 보내는 편지가 주고, 사비에르는 답장 대신 투기 금융 자본이 지배하는 바깥세상에 대한 간략한 메모 정도로 대신하고 있다.
분명 감정의 교류는 쌍방향일 것이다. 밖에서 약제사로 일하는 아이다가 약국에서 알약을 분류하고 처방전을 조제하며, 콩을 까고, 저혈당 혹은 그 반대로 쇼크가 온 당뇨병 환자를 긴급구조로 살려 내고, 난민들을 돕고, 5천만달러 짜리 아파치와 탱크로 그녀의 동지들을 잡아 가려는 무력시위를 연대의 힘으로 막아내는 동안 사비에르는 옥중에서 가지 않는 시간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흔치 않은 서간소설 양식에서 아이다가 보내지 않은 편지를 통해 연인에게 전달하고 싶은 내용마저 드러내는 반면, 사비에르의 관심은 오로지 정치적 투쟁에만 쏠려 있다는 느낌이다. 존 버저 작가는 이런 감정의 간극을 의도하며 글을 쓴 것일까? 그 점이 문득 궁금해졌다.
아이다가 옥중의 남자와 결혼을 시도했으나 아마 당국의 허락을 받지 못했던가. 두 달간에 걸쳐 책을 읽다 보니 내용마저 헷갈린다. 이것도 책읽기에 얽힌 오독의 즐거움이 아닐까. 저자가 저술한 내용과는 달리, 저자의 손에서 떠난 책은 오롯하게 오독마저 즐기는 엉터리 독자의 몫일 테니 말이다. 어쨌든 두 남녀의 편지를 통한 사랑 이야기 속에도 녹록하지 않은 우리네 현실은 전진을 계속한다. 전 세계 총 자본의 3% 정도가 생산에 재투자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그렇다면 그 많은 자본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이다와 사비에르 그리고 그들의 동지들이 저항하는 자본이 행사하는 폭력은 상상 이상이다. 일체의 저항을 허용하지 않고 중무장한 아파치와 탱크를 동원하는 ‘그들’을 상상해 보라.
존 버저 작가는 현명하게도 사비에르와 아이다가 사는 곳을 특정하지 않는다. 그곳은 스페인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터키일 수도 있다. 또 어쩌면 한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다양성을 부인하고 획일적인 질서를 구축해서 자본을 무한 증식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영속적인 지배를 위한 대전략이기 때문일까. 소설의 어느 부분에서 읽었던 이런 세상을 사는 것이 고통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렇게 세계화에 저항하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전달한 21세기 현자가 남긴 편지들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오늘까지 올해 들어 모두 6권의 존 버저 작가의 책을 읽었다. 나의 존 버저 책사냥은 계속 될 것이고, 다른 미술평론와 에세이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