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의 역사
마야 룬데 지음, 손화수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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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소설이다. 미래세계에 막시류에 속하는 벌들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가정 아래 쓰인 노르웨이 출신 마야 룬데의 데뷔작 <벌들의 역사>는 인류가 생각하는 미래가 항상 밝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어쩌면 디스토피아일 수도 있다는 가정으로 출발한다. 노르웨이에는 해리 홀레 경감으로 유명한 요 네스뵈만 있는 줄 알았는데, 마야 룬데 같이 새로운 작가도 있구나 싶었다. 새로운 작가의 책을 읽는 도전은 언제나 즐거울 따름이다.

 

<벌들의 역사>의 주인공은 다음의 세 명이 맡았다. 미래, 과거 그리고 가까운 현재 세계에서 각각 중국 쓰촨성의 인공수분 노동자 타오, 영국 하트포드셔의 학자 혹은 상인 윌리엄 그리고 미국 오하이오 오텀힐의 조지. 우선 세상에 존재하는 식물들의 수분을 그동안 도맡아 오던 벌들과 온갖 날벌레들이 전멸하자 이제 인간의 노동이 자연이 하던 일을 맡아 하게 된 시절이 됐다. 단순 반복의 노동에 시달리는 타오는 아들 웨이원에게만은 자신이 하는 일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한다. 이제 고작 세 살짜리 아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전해 주기 위해 밥풀로 숫자 세는 법을 알려 주려고 하는 그녀의 노력이 눈물겹다. 다른 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인공수분) 인구대국 중국에서는 순전히 인간의 노동력을 이용해서 가능하다는 설정도 눈여겨 볼만하다. 8살 어린 나이의 어린 아이들도 노동에서 예외는 아니라는 점도.

 

다음 주자는 잉글랜드에서 병상에 누워 있는 한 때 람 교수의 촉망받는 제자로서 조교이자 동물학자였던 윌리엄이다. 하지만 아내 틸다를 만나 자그마치 8명이나 되는 자제들을 두게 되면서 학문보다 생업에 더 힘쓰게 되고, 씨앗 유통 상인으로 변신하게 된다. 그런 제자를 람 교수는 돼지 새끼라며 모욕하고 그 충격으로 조지는 자리에 눕게 된다. 마지막 세 번째 주인공은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선조 대대로 물려온 특별한 디자인으로 설계된 벌통으로 벌을 치는 양봉업자 조지다. 대학에서 잠시 집을 방문한 아들 톰과 냉전 중이다. 그는 자신의 아들인 톰이 마케팅과 최신 경제학을 공부해서 가업을 잇길 바라지만, 톰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보수적인 양봉업자인 아버지와 가업 대신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어하는 아들의 갈등은 그래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마야 룬데는 미래 세계에 어떤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졌고, 디지털 네트워크가 작동하지 않게 되었으며 전 세계의 인구수도 10억으로 줄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는 대신 타오와 윌리엄 그리고 조지의 삶을 통해 벌들이 자취를 감추게 된 연원을 조용한 목소리로 추적한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작가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비교적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자연을, 우리와 벗하여 살아가는 생태계를 그대로 두라는 것이다. 꿀벌이나 날벌레하는 수분이 인류에게 어떤 혜택을 주는지 모르고 살아왔다. 그런데 막상 그런 존재들이 사라지고 나면, 자연이 하던 일을 인간이 대신해야 한다는 간단한 진리를 이 소설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문제는 그런 작은 일들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분명한 진실이다. 가령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고 있는 화석 에너지의 경우를 보자. 석유를 이용해서 발전해서 생산해내는 전기가 당장 끊어진다면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될까.

 

마야 룬데가 그리는 미래의 디스토피아에는 역시 가족 간의 갈등이 빠지지 않는다. 인공수분 노동자로 근근히 벌어먹고 사는 타오는 아들 웨이원에게 그런 미래를 물려주고 싶지 않아, 어린 나이에 무엇이라도 가르쳐 주려고 노력하지만 결과는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원인조차 알려주지 않고 소중한 아들을 베이징으로 이송해간 당국의 처사는 비인간적이다. 하긴 각자도생의 시절에 그런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조지와 톰의 경우를 살펴보자. 보수적인 양봉업자 아버지 조지는 아들 톰에게 자신이 하던 일을 가업으로 물려주고 싶어 하지만 아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이걸 세대 간의 갈등이라고 봐야 할까? 개화된 아들은 오직 조상 대대로 물려오는 비법대로 꿀벌을 치는 것이야말로 전부라고 생각하는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까. 군집 붕괴 증후군(CCD), 다시 말해 일벌들이 집단적으로 사라지는 현상 앞에 아버지와 아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웨이원의 케이스처럼 세상사가 다 그런 게 아닐까.

 

병상에서 일어난 윌리엄 새비지 씨는 꿀벌에 자신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고 분연히 관찰과 연구에 몰입해서 획기적인 꿀벌통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것 역시 이전에 누군가 이미 개발해서 특허까지 낸 제품이라는 사실에 그는 좌절하고 만다.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 에드먼드의 끝없는 비행 앞에 아버지는 망연자실한다.

 

타오는 아들을 찾는 와중에 얻게 된 책을 통해 어떻게 해서 지구에서 꿀벌이 사라지게 되었는지 연원을 추적하게 된다. 살충제의 무분별한 사용, 이상기후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양성 대신 천편일률적인 농작물재배를 선택해 재앙을 초래한 것이라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어떻게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과 너무 닮아 있지 않은가.

 

작가는 이렇게 세 가지 시대를 관통하는 가족 간의 갈등 구조와 인류에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혜택을 가져다 준 꿀벌과의 연관성을 배치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600쪽 달하는 이야기가 쉼 없이 돌아간다. 때로는 미스터리로, 때로는 가족 간의 갈등으로, 개인의 고뇌와 밥벌이의 지겨움, 인류적 재앙에 대한 경고에까지 마야 룬데는 이야기의 확장과 축소라는 상이한 방식으로 마치 아코디언을 연주하듯 <벌들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개인적으로 미래 디스토피아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법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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