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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도 함께
존 아이언멍거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1월
평점 :
소설 <고래와 함께>는 다분히 성경에서 연유한 이야기라는 느낌이다. 우선 요나와 고래에 대한 이야기가 그리고 욥기에도 등장하는 토마스 홉스의 그 유명한 “리바이어던(leviathan)”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주인공 조 학(Joe Haak)이 세인트 피란(St. Piran)의 307명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장면은 노아의 방주의 그것과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IT 컨설턴트 출신 존 아이언멍거의 세 번째 소설이라는 <고래와 함께>는 콘월 지방의 세인트피란이라는 가공의 마을에 벌거벗은 주인공 조 학과 고래 리바이어던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물론 인정 많은 시골 사람들은 한 마음으로 낯선 이방인을 살리는데 성공하고, 뒤이어 위기에 빠진 고래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는데 전력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위기에 빠진 공화국을 구하기 위해 오늘도 촛불을 들고 추운 겨울바람에 맞서 광장에 나서는 우리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지는 그런 느낌이다.
단박에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사면서 세인트피란에 연착륙한 조 학의 정체는 바로 시티(런던) 출신 통계와 수학에 정통한 애널리스트다. 공매도라는 희한한 방법으로 레인 코프먼 투자은행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벌어들이던 조 학은 자신이 개발한 캐시라는 덫에 걸려 그만 급전직하하고 만다. 우리도 최근에 신약개발회사의 주가농단으로 촉발된 사례를 통해 공매도 작전세력의 실체를 알게 되었는데, 주가가 뛴다고 해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주가 하락을 전제로 해서 마치 망하는 회사에 달려들어 수익을 내는 그야말로 정글 자본주의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존 아이언멍거 작가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지구 종말로 치닫는 미래 예측 프로그램으로 우리가 얼마나 에너지 자원에 매달려 있는지, 공동체가 파멸로 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이기주의에 입각한 수익 창출 모델에 매달려 있는지 조 학의 연대기를 통해 잔잔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었다.
레인 코프먼의 살인적인 스트레스 환경 속에서 장장 8년을 일하면서, 창의적인 발상을 바탕으로 캐시라는 인공지능적인 미래 예측 프로그램을 개발해낸 조는 다가오는 미래의 네 가지 시나리오 중 최악의 시나리오가 자신이 사는 영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를 덮치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잘 돌아가던 캐시에 오류가 생겼다고 판단되는 순간 레인 코프먼 은행은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을 기록하게 되고, 성서에도 등장하는 폭풍우에 휘말린 요나가 탄 배의 승객들처럼 모든 책임을 희생양에게 돌리기 위해 제비뽑기가 시행된다. 알다시피 그 희생양은 바로 캐시의 개발자였던 조였다.
소설 <고래와 함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예언했던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고래로 상징하면서, 조 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엇갈리게 배치하는 방식으로 갈수록 과연 세인트피란 사람들은 그들에게 닥친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조 학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을 어떻게 실천에 옮길 것인지에 주목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선지자 혹은 예언자의 말을 무시하지만 사람 좋은 세인트피란 사람들은 아마 예외였던 모양이다. 8천만 원 가까운 자신의 전 재산을 동원해서 자신과 고래의 목숨을 구해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식료품을 저장하는 그의 모습은 지구 종말을 의미하는 대홍수를 대비해서 묵묵하게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는 노아의 노고를 연상시킨다.
물론 그 와중에 이루어지지 않는 교구 목사의 젊은 아내 폴리 호킹과의 로맨스도 등장하고,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는 세인트피란 사람들의 이야기도 꾸준히 등장한다. 시티에서 짧았던 클레어와의 인연도 그리고 상사이자 감출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재니 커버데일과의 불같은 사랑도 쉴 새 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져 간다. 하지만 이야기의 모든 중심에는 홉스가 예언한 광폭한 환경에 대항하기 위해 권력의 상징으로서 리바이어던보다 한 마음이 되어 생존을 위해 투쟁에 나서는 공동체의 협력에 존 아이언멍거 작가는 방점을 찍는다. 어떤 영웅의 초인적인 능력과 예지로 공동체를 살릴 수도 있겠지만, 보잘 것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합심이야말로 우리가 삶의 터전을 마련한 공동체를 살리는 바로미터라는 것이야말로 소설 <고래도 함께>를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에너지 고갈과 독감 같은 유행성 전염병이 지구 종말을 촉발시키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당장 세 끼만 굶게 되면 인류의 위대한 문명이 붕괴될 수 있다는, 모든 것이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전기 에너지와 식수 공급이 중단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이미 오래 전에 미국에서 발생했던 블랙아웃으로 증명된 바 있다. 글로벌리즘으로 지구촌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게 되지 않은 현실에서,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아시아 독감이 전 세계를 휩쓸고 에너지 자원의 유통을 마비시키고 순차적으로 네트워크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은 낯설게 들리지 않았다.
또 하나 아이언멍거 작가의 놀랍고 탁월한 솜씨 중의 하나는 바로 성경에서 가져온 텍스트를 이용해서 현대문명의 취약점을 짚어내면서도, 공동체와 인류에 대한 따뜻한 사랑, 그리고 과거의 어느 순간에 대한 추억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새로 시작하기 가장 좋은 시점이라고 피력하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모름지기 영웅은 떠나야 하는 법인가.
초반의 느린 진행에 비해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갈수록 과연 세인트피란 마을의 생존기가 어떻게 귀결될 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문학적 클리셰이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정도야 옥의 티 정도로 봐줄만 했다. 좀 더 역동적인 고래의 모습이 그려져 원서 표지를 봤는데, 개인적으로 그 표지가 더 마음에 들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읽기에 부족함이 없는 <고래도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