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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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반빌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바다>에 앞서 <닥터 코페르니쿠스>를 먼저 읽었다. 천동설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던 시절, 지동설로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제의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의외로 소설은 인간 코페르니쿠스의 내면세계에 방점을 찍고 있어서 조금 당황했다. 이게 과연 존 반빌 작가의 스타일인가. 사실 작년에 이 책을 읽고 나서 무언가 거창한 리뷰를 쓰겠노라고 작정했지만 리뷰는 아직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바로 존 반빌의 그 유명한 부커상 수상작인 <바다>를 읽기 시작했다.

 

참 오래 걸린 독서였다.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위키피디아와 타 블로그의 도움을 받아 처음 읽었던 98쪽의 이미지들을 되살려냈다. 그러자 어렴풋이 떠돌던 기억의 잔재 속에서 주인공이자 소설의 화자 미술사가 맥스 모든이 기억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소설 <바다>는 세 가지 층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나는 주인공 닥터 맥스가 11살이던 시절 아일랜드 바닷가의 여름휴양지에서 선망하던 그레이스 가족과 함께 보낸 추억들, 다른 하나는 아내 애나가 시한부선고를 받고 죽음과 사투를 벌이던 시절에 대한 기억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회상해내고 글로 적어 내려가는 현재의 이야기. 원서로는 200쪽도 안되는 짧은 분량의 책이 생각처럼 쉽게 소화해낼 수가 없었다.

 

<닥터 코페르니쿠스>에서도 그랬지만 존 반빌은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그려내는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잡아낸 단초들을 바탕으로 문장을 재단하고, 단정하게 정리해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당시의 감정들을 생생하게 담뿍 담아낸다. 내가 만약에 글을 쓴다면 존 반빌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상상에 도달하자 피식하고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다. 수십 년간 대가가 쌓아온 내공을 욕심내다니. 문득 이 소설에서 내가 중점을 두고 있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닥터 맥스가 들려주는 정확하지 못한 과거에 대한 기억의 내러티브일까? 아니면 주인공의 변화무쌍한 심리상태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주인공 맥스의 코니 그레이스에 대한 찰나적 사랑, 그녀의 딸인 클로이로 급속하게 옮겨간 배신적 사랑? 그것도 아니라면 죽은 아내 애나에 대한 애도? 외동딸 클레어와의 끊이지 않는 불화? 닥터 맥스가 논문을 쓴다는 피에르 보나르에 대한 아카데믹한 열정? 존 반빌의 글은 거친 물길을 유연하게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이렇게 숱한 이야기 사이를 넘나든다. 그의 문장에서 빛나는 찰나 같은 아름다움은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고 손가락 사이로 쉬 빠져 나가 버리는 모래 같다. 오래전 아마 난 그 아름다움에 미혹당했으면서도 동시에 잡히지 않는 그 무엇에 책읽기를 포기한 모양이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가 구사하는 문학적 난해함 때문이지 않을까.

 

소설의 전반주에 해당하는 1부가 피상적인 접근이라면, 2부에서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결국 우리 독자는 클로이와 마일스 쌍둥이 남매가 어떤 오해에서 비롯된 다툼 끝에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어려서부터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무언가 되고 싶어하던 맥스 모든이 런던의 어느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부유층 출신의 애나와 가정을 꾸려 원하던 계급적 상승을 이루는 일련의 과정을 받아들이게 된다. 아내의 죽음보다 수십년 전 한 여름을 같이 보냈던 쌍둥이들의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미술사가의 고뇌에 찬 이야기는 어차피 우리 인간은 숙명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근원적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작가는 ‘만약에’라는 가정으로 현재 삶의 좌표를 수정하려는 사고 자체를 부정한다. 만약에 쌍둥이들이 그 파도에 휩쓸려 가지 않았더라면 닥터 맥스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만약에 딜레당트한 딸 클레어가 좀 더 격에 어울리는 남자를 만났더라면? 아내 애나의 암을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할 수 있었다면? 이 모든 가정들은 현재의 시점에서 무의미한 공상일 따름이다. 존 반빌은 겨울 바닷가의 풍경을 관조하는 것처럼 고달프거나 괴롭기 짝이 없더라도 삶 그 자체를 받아들이라고 주문한다.

 

맥스 모든은 스스로를 늙은 원숭이라 자조하며 로즈 바버수어 양이 여전히 지키고 있는 시더스로 돌아가 아내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는 아내가 죽은 현재와 그레이스 가족과 보내던 뜨거웠던 여름의 과거 그리고 아내가 죽음을 기다리던 순간의 과거를 반복해서 넘나든다. 가까스로 그렇게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니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건 또 다른 죽음이었노라고 닥터 맥스는 온몸으로 증명에 나선다. 결국 바다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바다에서 끝낼 수밖에 없었나 보다.

 

책을 어렵게 다 읽고 나니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광휘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발굴해 내기 위해 혹은 마음에 드는 문장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나. 모르겠다. 정답을 알 수 없는 우리네 인생처럼 문학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마음에 사유의 파도를 일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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