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어쩌면 당신도 마주칠 수 있는 순간들 79 - 바르셀로나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김영주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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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다. 책의 서두에 여행을 끊었다가 다시 여행길에 나서게 되었노라고 글쓴이는 밝히고 있는데 정말 순수하게 여행이 좋아서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책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사실 그저 단순한 여행객이라면 이렇게 꼼꼼하게 글을 쓸 수 없겠지. 그리고 사진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여행을 하면서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정리를 하지 않으니 아무 소용이 없더라. 이젠 기억마저 오래돼놔서 정리할 자신도 없고. 어쨌든 자신이 하고 싶은 여행을 마음껏 하면서 책까지 낼 수 있다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부럽다 부러워.

 

글쓴이의 이번 여행 목적지는 안달루시아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안달루시아행 직항편이 없으니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에서 출발하겠지. 예상대로 글쓴이와 동행 T라는 분은 카탈루냐 지방의 거점인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를 만끽하고, 그리고 몬주익 스타디움에서 무엇보다 부러운 U2의 공연(아직까지도 U2는 우리나라 공연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단다, 놀랍군. 더 놀라운 건 앞으로도 그들의 공연을 우리나라에서 볼 기회가 없을 거라는 암울한 전망!)을 즐겼다는 것이다. 80년대 U2의 노래를 들으며 자란 나에겐 한없이 부러울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였다. "With Or Without You"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줄줄 흘렸단 이야기는 정말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않았다.

 

좀 냉소적일 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그동안 숱한 스페인 기행 서적을 섭렵해 온지라 그녀가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안토니 가우디의 걸작들 특히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대한 감상 등은 시큰둥하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책으로 만나는 타인의 감동은 온전하게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몸이 깨달은 모양이다. 람블라스 거리의 낭만도 이미 다른 책들에서 많이 듣고 봐온지라 가보지는 못했지만 여행서적 베테랑으로서는 좀 그랬다.

 

글쓴이와 동행 T는 어쨌든 바르셀로나의 황홀한 추억을 뒤로 안달루시아의 첫 번째 도시 세비야로 비행기를 이용해서 공간이동을 감행한다. 도보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고, 자동차로도 길 한 번 잃지 않고 족히 10시간은 달려야 하며 직행열차도 없으니 비행기가 가장 합리적인 이동수단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어제 막 읽은 일본 에세이 작가의 카미노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에서도 굳이 도보로 걸어야 하나 하는 글을 읽었는데, 삶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여행 방법에도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아니한가.

 

그러다 저자가 준비한 신의 한수가 등장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됐다. 그것은 바로 타리파에서 마주한 아프리카 대륙의 모로코 땅 탕헤르에서의 한나절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그림 같은 휴양을 즐길 수 있었던 타리파 아파트 발코니도 그랬지만, 스페인 무데하르 양식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마그레브 지역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여행길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좋은 가이드의 도움으로 마티스와 윌리엄 버로스 같은 예술가들의 족적을 따르는 여정이 조금은 뾰루퉁했던 마음을 풀어주었다고 할까. 여행가라면 모름지기 이 정도의 내공을 갖추어야 하지 않았을까.

 

탕헤르 한나절에 비하면 나머지 일정은 여느 여행자들의 그것과 다를 게 없을 것 같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금지되었다는 투우 경기를 보지 못해 안도했다는 마음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될 듯 싶기도 하다. 미하스 푸에블로 광장에서 만난 거리의 플라멩코 공연 같은 행운도 마냥 부러웠다. 뜨내기 여행자가 그런 공연을 찾아서 볼 기회가 어디 흔하겠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여행 팁 중의 하나인 알함브라의 온전한 투어를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예약이 필수라는 중요한 사실을 나같이 무계획한 여행을 선호하는 나그네에게 알려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여행은 평소의 안락함 대신 ‘천국보다 낯선’ 곳에서 불편함을 추구하는 고행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대로 여행의 끝에 기다리는 집으로 무사하게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가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나니, 나그네의 고행과 무한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되짚어 보니 여행길에서의 어떤 고생도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총천연색 멋진 추억으로 시냅스에 각인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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