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유 - <미 비포 유> 두 번째 이야기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두툼한 분량이다. 500쪽이 훌쩍 넘어가는 분량에 조금 놀랐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고 보니 전혀 분량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친 전작 <미 비포 유>를 읽지 않았다는 점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인공 루이자 클라크의 18개월 전 삶이 너무 궁금해서 전작의 플롯 부분은 우리의 친절한 위키피디아 플롯 서머리를 통해 해결했다. 하지만 루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주인공 루가 간호를 맡았던 윌은 자신의 바람대로 스위스의 디그니타스 시설에서 죽음을 맞았다. 문제는 루와 윌이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홀로 남은 루는 아직 윌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어찌 보면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신데렐라를 든든하게 후원할 왕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남긴 유산으로 루가 정든 고향을 떠나 대도시 런던에서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점 정도. 뭐 그 정도만 해도 소설의 전개상 충분조건은 갖춰진 셈이다.

 

윌을 존엄사로 잃은 상실감과 공항의 아이리시 테마 펍에서 짧은 루렉스 스커트를 입고 밥벌이의 지겨움을 감당하던 루는 어느날 사고로 옥상에서 추락하게 된다. 그녀의 사연을 아는 모든 이들은 그것을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지만. 부모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몸을 추슬러 직장에 컴백하지만 싸이코 같은 직상상사 리처드의 갈굼이 도를 더해가던 차, 느닷없이 나타난 한 명의 등장으로 루의 평온해 보이는 일상에 다시 격랑이 일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릴리, 죽은 윌 트레이너의 딸이란다. 소설의 전개상 릴리가 모범생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 골초에 술이며 이름 모를 마약 그리고 나이트클럽에 밥 먹듯 드나다는 그런 문제아 중의 탑클래스 문제아다.

 

여전히 윌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는 루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새 출발 서클에도 나가 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낯선 이들과의 대화가 영 탐탁지 않다. 그 모임을 계기로 해서 만나게 된 샘 필딩과 썸을 타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뉴욕에 있는 네이선의 조력으로 병간호 일자리에 지원하기도 한다.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모님의 갈등도 루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문제 중의 하나다. 이렇게 스스로의 앞감당도 못하는 이십대 아가씨가 열여섯 살짜리 릴리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조조 모예스는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꼬인 인간관계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주지시킨다.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새출발한다는 게 상상 이상으로 어렵노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도 굵직하게 방점을 찍는다. 사랑을 사랑으로 극복하라는 말처럼 그렇게 만나게 된 루와 샘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어디 사랑이라는 녀석이 순탄하기만 하던가. 오해와 불신으로 위기를 만나기도 하고, 발목 잡는 과거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청춘들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단순하게 그런 로맨스의 감정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까지 걸린 일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어떤 선택이 자신에게 최선의 것인가 끊임없이 되묻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란 말인가. 루에게는 윌과 함께 한 6개월이라는 시간이야말로 자아성찰의 계기이자, 진정한 자아에 대해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면 런던에서 샘과 릴리를 통해 얻은 건 또다른 레벨의 자아로 나아가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사실 위키피디아의 플롯 서머리만으로는 전작에 흐르는 전반적인 아우라를 잡아낼 수 없었다고 고백해야겠다. 하지만 윌과의 관계를 차치하고서라도, 별개의 이야기로 읽어도 조조 모예스의 <애프터 유>는 충분히 핍진성 넘치는 다양한 스토리라인을 구사하고 있다. 결말까지 도대체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 가려고 이런 구성으로 내달리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라고나 할까. 지나친 스포일은 하고 싶지 않지만, 전작이 비극적 결말로 마무리되었다면 이번 <애프터 유>는 상대적으로 희망찬 해피엔딩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나 행복해라며 릴리에게 루가 보낸 문자야말로 루의 앞날을 예고하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여주인공 루에게 보통 사람들이라면 평생에 한 번 오기 힘든 기회들이 우수수 떨어진다는 설정과 윌의 딸로 등장한 릴리에 관한 부분이 너무 자극적이라는 점 그리고 샘과의 재결합을 위해-어쩌면 나중에 영화화를 위해 준비되었을 지도 모르는- 충격적인 총격장면이 개인적으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애프터 유>가 넌픽션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어쨌든 간만에 긴장감 넘치는 로맨스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원작자인 조조 모예스가 각색을 맡고 다음 주에 개봉 예정인 <미 비포 유>의 영화 트레일러를 봤는데, 에밀리아 클라크가 맡은 루 역은 정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트레일러 중에서 루가 윌의 휠체어에 타서 360도 회전하며 대화하는 장면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윌이 루에게 그런 멋진 삶을 살도록 선물해 줬다면 <애프터 유>에서 자신의 많은 부분을 희생하며 윌의 딸인 릴리를 위해 헌신하는 루의 진심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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