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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위한 시간 - 유럽 수도원 기행 ㅣ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패트릭 리 퍼머 지음, 신해경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모두가 알고 있지만 회피하고 싶은 사실이 하나 있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제 읽은 패트릭 리 퍼머가 방문한 수도원에서 영성을 가꾸며 사는 수도사들, 특히 트라피스트로 알려진 시토수도회에 소속된 라 그랑 트라프 대수도원 이야기를 읽어 보니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읽은 <침묵을 위한 시간>의 저자 패트릭 리 퍼머는 영국 출신의 전쟁 영웅이다. 황현산 선생이 추천한 <그리스의 끝, 마니>란 책으로 이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2년 전에 읽기 시작한 책을 아직도 못 다 읽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적은 분량의 책이라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얄팍한 꾀로 부지런히 읽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게 끝인가 싶을 정도로 금세 다 읽었다.
아주 오래 전에 공지영 작가가 쓴 <수도원 기행>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 전에 읽은 모양이다. 가톨릭 신자인 작가의 수도원 피정 이야기가 주를 이뤘던 것 같은데(이조차도 명확하지 않다), 수십 년을 수도원에서 묵언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행적을 뒤쫓으며 생활하는 수도사들의 이야기를 며칠간의 체험으로 과연 글로 담아낼 수 있는지 나도 의문이 들었다. 아마 그 부분에 대해 패트릭 리 퍼머 역시 자신의 책이 출간되고 난 후에 어느 익명의 수도사로부터 받은 편지를 받고 반성하는 신문에 실었다고 했던가.
<침묵을 위한 시간>에는 사실 많은 수도원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베네딕토 수도회를 대표하는 수도원으로 생 방드리유 드 퐁트넬 수도원, 솔렘 대수도원,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문자 그대로 따르는 시토회 라 그랑 트라프 대수도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는 폐허가 되어 유적만 남은 비잔틴 시대의 바실리오 수도회의 카파도키아 바위 수도원이 차례로 등장한다. 저자의 그것과는 달리 일천한 지식으로 독서한 바에 따르면, 고대 수도원의 유래에서부터 시작해서 지식과 학문의 보고이자 교육기관으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중세를 거쳐, 프랑스혁명이라는 암흑기를 거쳐 다시 속세와 분리된 자급자족적인 공동체로서 수행에 방점을 둔 고유의 목적으로 돌아간 현재(그것도 반세기 전의 기록이다)를 그리고 있다.
근대 수도원의 위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세 봉건질서의 한 축이 종교집단이었던 사실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프랑스혁명기의 성난 군중들이 종래 신분질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와 수도원을 타깃 삼아 공격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고행을 통해 개인의 영성을 강화하고 수도하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세속화되고, 종교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는 결국 폭력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았던가. 패트릭 리 퍼머가 자신의 글을 가다듬기 위해 수도원을 순례하던 시절과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졌다.
개인적으로 카파도키아에 산재해 있던 바위 수도원에 대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오로지 시간이라는 제한을 초월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역사가 아니었을까. 이교도들의 침입을 피해 신의 계시를 피해 주상고행이나 수상고행을 하며 그런 숭고한 유적을 남긴 이들이 또 무슨 이유에서 흔적도 사라졌는지에 대한 작가의 문제제기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시대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어와 역사 그리고 종교에도 정통한 이들의 노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절로 공감이 갔다. 서두에 작가가 인용한 것처럼 그런 진실을 풀기 위해서는 어쩌면 때를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일천한 독서후기는 아마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이 책을 접으면서 난 먼저 읽기 시작한 패트릭 리 퍼머의 <그리스의 끝, 마니>부터 다 읽어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