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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그리고 엄마
마야 안젤루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평점 :
새벽에 일어나 마야 안젤루의 신간을 펴들었다. 사실 그녀의 책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도통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 흑인이 사람대접을 못받던 시절에 태어난 작가는 여성에 인종차별까지 감내해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싱글맘으로 신산한 삶의 격랑을 헤쳐나와야 하는 그런 극한의 상황을 어머니 ‘레이디’ 비비언 백스터 여사와 신의 축복으로 이겨냈다고 한다. 아직 그녀의 다른 책을 만나 보지 못해 자신의 긴 삶을 회고하는 <엄마, 나 그리고 엄마>만으로 그녀의 삶을 가늠해 볼 수밖에 없었다.
마야 안젤루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왔다.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엄마 비비언이 자신과 오빠를 아칸소에 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났다는 것이다. 그것도 세 살 때. 나중에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패밀리 리유니언을 하게 되었을 때, 가족 간의 화합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못하고 ‘레이디’라는 호칭으로 마야가 부른 이유였다. 바로 그 지점에서 작가가 레이디에서 어머니로, 다시 어머니에서 엄마를 찾는 과정이 소설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작고하신 작가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마야 안젤루는 참 남자복도 없는 여인이다. 속칭 ‘두 손가락’ 마크란 작자는 질투심에 못 이겨 마야를 죽음 일보 직전까지 몰아 붙였다. 어린 나이에 비슷한 또래 남학생과의 불장난으로 사랑하는 아들 가이를 낳았지만,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노라고 레이디에게 고백한다. 백인남성 토시 앤젤로스와는 공식적인 결혼에까지 골인했지만 레이디의 예언대로 흑백 간의 결합은 쉽지 않았다. 돈을 벌어 생활비를 조달하고 알레르기에 시달리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침내 좋아하는 댄스를 돈벌이 접목해서 스트립 댄서로 무대에 서기도 했단다. 그리고 보니 전 남편 토시가 그녀가 춤추러 다니는 것과 교회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을 싫어했었지 아마. 마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는 슈퍼히어로는 바로 레이디 백스터 여사였다. 자신 역시 삶의 현장에서 체득한 그녀만의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해서 약자에게는 무한의 동정과 위로 그리고 실질적 도움을 그리고 마크 같은 무뢰한에게는 총기 사용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강단을 보여 준다. 마야가 스트립 댄서로 무대에 설 적에는 직접 무대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다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마야 안젤루의 인생유전을 따라 가다 보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남긴 상흔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상흔들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엄마 백스터 여사의 사랑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백스터 여사는 사랑하는 딸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나서서 쟁취하라고 격려한다. 통금시간을 지키지 않은 딸에게 손찌검도 마다하지 않는 폭군 같은 이미지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조금 불편할 뿐이라는 말로 든든한 후원을 아끼지 않는 사랑의 전도사라고나 할까. 멀리 스톡홀름까지 날아가 단박에 분위기를 휘어잡는 백스터 여사야말로 다방면에서 다양한 성공을 거둔 멋진 작가의 영웅이었다.
이런저런 행사로 분주했던 가정의 달 5월에 내가 만난 마야 안젤루의 <엄마, 나 그리고 엄마>는 참 가슴 훈훈해지는 그런 책이었다. 흡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