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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스트링
미치 앨봄 지음, 윤정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4월
평점 :
이 소설을 읽으면서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 건 화자가 바로 ‘음악’ 그 자체라는 점이다. 음악은 신처럼 전지전능하며 그가 사랑하는 제자의 삶에 대한 알파와 오메가를 모두 꿰고 있다. 그래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천재 기타리스트 프랭키 프레스토의 파란만장한 삶을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들려 준다. 또 한 가지 서사에서 특이할 만한 점은 탄생에서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그것도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꿈꿀 법한 무대에서 죽은 가히 기타의 신이라고 할만한 사나이 삶의 궤적을 추적한다. 어쩌면 미스터리 소설 찜쪄 먹을 정도의 프랭키가 구사하는 속사포 기타 연주 같은 그런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소설을 읽을수록 독자가 빠져 들지 않을 재간이 있나 그래.
서두에 포레스트 검프를 언급했는데 로버트 저메키스의 감독의 영화에서 약간 어리숙한 우리의 주인공 검프가 미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사건들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개입했다면, 소설에서 프랭키 프레스토 역시 미국 팝역사의 굵직한 대표선수들과 자웅을 겨룬다. 캐나다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대신해서 무대에 섰으며,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가기 위해 밀항한 영국에서는 두손가락의 천재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에게 한 수 배운다. 듀크 엘링턴과도 만났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도시인 디트로이트와 내슈빌 그리고 뉴올리안스를 전전하며 당대의 대스타를 만나 갖가지 에피소드들을 엮어낸다. 그것은 마치 촌에서 강호로 나온 초짜가 고수들과 대결을 통해 비전의 무공을 배워 마침내 강호를 평정했노라는 무협지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프랭키에게 진짜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한다 하는 그런 아티스트들이 아니라, 자신의 고향 비야레알에서 만난 장님 기타리스트 엘 마에스트로였다. 연주하기 전에 먼저 들으라는 그의 가르침에서부터 시작해서 부드럽게 기타줄을 다루라는 주옥 같은 명언들을 프랭키는 가슴 속 깊이 간직한다. 팝음악이라는 강호에서 고수가 되기 위해 엘 마에스트로의 레슨이 필요했다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사랑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었다. 미치 앨봄 작가는 그런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프랭키가 평생을 바친 연인 오로라 요크를 등장시킨다. 그것은 마치 검프의 제니에 대한 숭고한 사랑의 음악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절묘하게도 그렇게 영화와 소설은 다르면서 또 한편으로는 유사하게 공명하고 있었다.
스페인 내전의 와중에 태어나 어머니를 잃고, 그를 키운 양아버지 바파 루비오마저 정어리공장 직원들의 밀고로 잃은 프랭키는 엘 마에스트로의 도움으로 독재자 프랑코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유와 물질이 넘치는 나라 미국으로 밀항하는데 성공한다. 지금 같으면 어림 없는 이야기겠지만 그 시절만 해도 그렇게 국가 간의 왕래가 자유로웠다고 치부해 두자. 고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지내던 프랭키는 오직 기타 하나와 자신의 천부적인 재주로 음악계를 평정하기에 이른다. 동시에 여전히 자신이 꿈꾸는 애인 오로라를 언젠가는 찾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신념으로.
소설은 프랭키 프레스토의 일대기와 그의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모여든 명사들이 회고하는 그의 단편적인 삶의 이야기들이 버무려지면서 엔딩으로 치닫는다.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인 이야기의 균형을 잡아 주는 건 바로 ‘음악’이다. 한편 프랭키는 자신의 실력으로 바닥에서 치고 올라가 마침내 정상에 올랐지만, 인생사가 그렇듯 갑자기 찾아온 성공과 행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어렵게 찾은 오로라마저 떠나보내고 히피시대의 정점이었던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연주와 더불어 끔찍한 자해로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다. 우리의 주인공 프랭키는 어떻게 다시 반등할 것이며, 결말에서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 놀라운 반전은 또 무엇일까.
책을 읽다가 문득 어쩌면 작가가 영화화를 고려해서 소설을 집필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스케일과 촘촘한 이야기의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인생을 밴드에 비유해서 쉴 새 없이 가족이라는 밴드, 공동체라는 밴드, 친구라는 밴드, 연인이라는 밴드 같이 살면서 알게 모르게 유기적으로 결합하게 되는 관계를 밴드에 비유하는 장면도 정말 멋졌다. 어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감정과 관계의 유효기간이 소멸하면 밴드는 해체되기 마련이고 또다른 만남을 향해 나가게 된다는 이야기가 솔깃하게 들렸다. 게다가 한 시절을 풍미한 멋진 노래들까지 등장하니, 할리우드에서 이런 소재를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을 것 같다. 감동 넘치는 인생 파노라마에, 스페인에서 출발해서 영국과 미국 그리고 뉴질랜드까지 커버하는 로케이션, 좋았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까지 나오면 더 바랄 게 없겠지 아마도. 좀 엉뚱항 상상이긴 하지만, 프랭키와 포레스트 검프가 만나는 설정은 어떨까. 프랭키 프레스토와 함께 한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