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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핑 뉴스
애니 프루 지음, 민승남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뉴요커 단편소설 코너를 통해 애니 프루 작가를 알게 됐다. 전혀 몰랐었는데 <브로크백 마운틴>이 그녀의 작품집이었단다. 애석하게도 미디어 2.0을 통해 나온 그녀의 책 두 권 모두 절판의 운명을 맞은 모양이다. 아마 출판사가 수명을 다한 것 같다. 1993년 퓰리처상 수상에 빛나는 작품에도 불구하고 이제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이 되어 버렸다. 난 그나마 운이 좋아 중고서점을 통해 이 책을 구해 읽을 수가 있었다. 2001년에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다고 하는데, 수십 명의 쿼일들이 집을 끌고 이동시키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삼십대 중반의 쿼일은 태어나서 내내 찌질한 인생을 살았다. 대학교육도 채 마치지 못한 채 뛰어든 취업전선에서 삼류 신문 기자로 해고와 복직을 번복하면서 살아왔다. 그나마 우연찮게 매력넘치는 아내 페틀 베어(영화에서는 케이트 블란쳇이 페틀을 연기했다)와 결혼해서 버니와 선샤인이라는 딸들을 얻었지만, 바람기를 주체할 수 없었던 페틀이 딸들을 팔아넘기고 도주를 하다가 사고로 유명을 달리 하게 된다.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쿼일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각각 간암과 뇌종양 선고를 받고 파국을 맞이한다. 아내를 잃은 충격에서 헤어날 수 없었던 쿼일은 유일한 혈육이 애그니스 고모에게 기대하지도 않았던 S.O.S.를 쳤는데 애그니스 고모가 덜컥 제안을 받아들여 아이들과 쿼일네 원래 고향인 뉴펀들랜드로 떠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고향 뉴욕에 아무런 미련이 없던 쿼일은 두말없이 미지의 세계로의 여정을 선택하고 뉴펀들랜드의 킬릭클로로 떠난다.
킬릭클로의 <게미 버드>란 지역신문사에 새로 둥지를 튼 쿼일은 40년 전에 고향을 뜬 쿼일네 버려진 집을 수리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으로 만들고, 억센 바닷사람들과 접촉을 늘려 가면서 비로소 경청이라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을 두 번이나 번역한 역자 민승남 씨에 의하면 <시핑 뉴스>는 오래 전에 <항해 뉴스>란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고 한다. 저널리스트로 직업을 시작한 애니 프루의 역량이 소설 <시핑 뉴스>에 잘 드러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인생의 실패자 쿼일이 조상의 고향 뉴펀들랜드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정착해서 시도하는 새출발은 연어의 회귀를 닮았다고 해야 할까. 소설에서 애니 프루 작가는 뉴펀들랜드 앞바다에서 넘치던 대구잡이로 호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하지. 지금은 지나친 남획으로 거의 멸종에 도달한 대구가 그 시절에는 자그마치 100KG이나 나가는 녀석들이 잡히기도 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대구잡이 시절이 지나간 다음에는 대규모 유전개발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현대판 골드러시가 예고되어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게미 버드>의 사장 잭 버깃은 아이러니하게도 쿼일에게 자동차 사고를 다루는 임무를 맡긴다. 쿼일의 아내가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걸 몰라서였을까? 아니면 고통스러운 임무를 통해 과거를 잊으라는 묵시적 명령이었을까. 어쨌든 그동안 거친 인생을 살아온 쿼일은 가십과 항해 뉴스를 주로 다루는 <게미 버드>에서 진정한 저널리스트로 거듭나게 된다. 동시에 쿼일 가문에 숨겨진 비밀에도 조금씩 다가서게 된다. 거의 유령 같은 존재였던 먼 친척 놀런 아저씨를 통해 애그니스 고모가 양친의 화장한 유골을 새로 장만한 옥외화장실에 퍼붓었는지 알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바다라는 검은꽃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며 바다의 희생자가 되어 가면서도 뉴펀들랜드 어부들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된다. 차로 쿼일 고택에서 킬릭클로까지 출퇴근하는 게 무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쿼일이 거의 사기로 고물배를 인수했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사건도 눈여겨 볼만하다. 동시에 엄마 페틀의 죽음을 극복해야 하는 버니와 선샤인의 공포에 대해서도 섬세한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
500쪽이 훨씬 분량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의 화수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쿼일 자신도 지나간 사랑을 극복해야 하는 미션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역시 바다에서 남편을 잃은 웨이비 프라우즈의 등장 역시 최고의 설정이 아니었을까. 두 사람 모두 배우자를 잃었다는 점에서 상실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뒤에 남은 자녀들을 보살펴 줄 아버지와 어머니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때 사랑했던 아내와 남편을 빈자리를 채워 이상적인 가정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희망의 전주곡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또 작가가 후기에서 밝히고 있듯이, 애슐리 매듭서라는 책에 소개된 매듭짓기로 각 장마다 소개되어 관계의 매듭을 상징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어쩌면 몸서리칠 정도로 잔혹한 물개잡이를 하고, 진탕 술을 퍼마시고 방랑생활을 위해 떠나는 넛빔의 송별 파티에서 그를 잡겠다고 꽃단장을 마친 넛빔의 배를 도끼로 부수는 뉴펀들랜드 사람들의 기행(사실 소설에서 가장 재밌는 장면 중의 하나였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불행의 삼연타를 맞고 조상의 고향을 찾은 쿼일의 조상이 해적이었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않다. 굳이 파고들지 않아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밝혀지는 쿼일 가문의 비극에 대한 서사진행은 놀랍기만 하다.
소설에서 역시 핵심은 때로는 살풍경하고 거친 바다로 대변되는 뉴펀들랜드의 대자연과 그 안에 서식하고 있는 멋진 사람들에 대한 정겨운 묘사다. 사랑하는 남편을, 아들을, 아버지를 바다에 잃고서도 바다를 떠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일거리를 찾아 토론토나 뉴욕 같은 대도시로 떠난 이들의 그것과 대조를 이룬다. 한편으로는 대도시의 그런 떠들썩하면서도 안락한 삶을 동경하면서도, 조금은 불편할지는 몰라도 서로를 돌봐주는 사람냄새나는 정(情)을 애니 프루 작가는 정조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얼음판 같이 떨리는 균형 속에서 종잡을 수 없는 세상살이를 이해하기란 역시 쉽지 않은 것 같다. 벌써 발표된지 이십년도 훌쩍 지난 작품이지만, 한 고장과 그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밀착취재를 바탕으로 해서 지은 매듭처럼 견고한 글쓰기가 돋보인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