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디 - 사랑의 연대기
미즈바야시 아키라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애견인도, 애묘인도 아니다. 그리고 개도 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개를 먹는 사람들을 폄훼할 생각도 없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도 그리고 동물을 먹는 사람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보면, 가끔 엄동설한에 꽁꽁 무장하고 고양이밥을 챙겨 주러 나온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우리와 함께 사는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참 이뻐 보인다.

 

이 책 <멜로디>는 일본 출신의 18세기 프랑스문학 전문가이자 일본의 프랑스 문학 선생님 미즈바야시 아키라가 자신의 생에서 12년을 함께한 가족 멜로디에 대한 추억을 담은 사랑의 연대기다. 보통의 이야기들은 시간의 연대순을 따라 가기 마련인데, 작가는 마지막을 맨 앞에 배치했다. 어린 나이에 프랑스 문학과 언어에 매료가 되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프랑스로 떠나 경계인의 삶을 산 인문학자가 남긴 사랑의 연대기다.

 

저자는 근대 철학의 시조라 불리는 데카르트의 기계적 동물론에 반대한다. 그의 이러한 반대는 자신의 가족이었던 골든레트리버 멜로디와 함께 하는 삶에서 체득한 것으로 데카르트는 물론이고 그의 계승자였던 말브랑슈가 말한 동물에게는 지성도, 영혼도 없다는 견해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인간의 천성을 넘어 동물의 자연권을 주창한 루소의 편에서 동물들이 인간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 가야한다는 미즈바야시 선생의 주장이 내게는 좀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멜로디의 입양, 성장, 출산 그리고 소멸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통해 저자가 진심으로 멜로디를 동물이 아닌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8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임종을 함께 하지 못했듯, 미즈바야시 선생 역시 사랑하는 멜로디의 임종을 함께 하지 못했다. 나카노 거리를 활보하길 즐기고, 주인의 귀가를 진심으로 반기며, 그 좋아하는 먹이도 주인과 함께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극도의 절제력을 발휘해서 참아낸 기다림의 미학이 미즈바야시 선생과 멜로디의 관계를 통해 이 에세이에서 멋지게 재현되었다. 인간 세계의 일로 바쁜 와중에서도, 멜로디의 마지막 가는 길을 준비해 과정은 개인적으로 읽기가 쉽지 않았다. 간접 체험을 하는 독자도 이럴진대 하물며 멜로디를 가족으로 받아 들이고 12년을 함께한 미즈바야시 선생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에세이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 중의 하나는 프랑스 어를 하는 지인들과 함께 한 크리스마스 파티에 멜로디를 초대해서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기록이었다. 즐거움으로 가득한 공간에 한동안 소외된 자신의 또 다른 가족을 초대한 미즈바야시 선생의 용기야말로 진정 함께하는 삶을 위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또 멜로디를 마지막으로 보내며, 사랑하는 미셸에게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이야기들을 글의 힘을 빌어 하는 장면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부국어인 프랑스 어를 사랑하고, 가족이었던 멜로디를 가슴에 묻은 인문학자가 남긴 사랑의 연대기는 그래서 더 절절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이 책은 미즈바야시 아키라 선생이 프랑스 어로 쓴 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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