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기
리디 살베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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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리디 살베르의 공쿠르상 수상작인 <울지 않기>를 읽고 나서 시간이 제법 흘렀다. 바로 리뷰를 썼어야 했는데, 천성이 게으른 지라 차일피일 미루다 그만 새해가 열하루나 지나가 버렸다. 개인적으로 리뷰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바로 써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데, 늦고 말았다. 인간의 기억력이란 참 간사한지라 책을 읽으면서 강렬한 느낌을 받지만 기록해 두지 않으면 바로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어쩌면 바로 그 지점에서 리디 살베르의 소설은 방점을 찍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를 잊지 말자고.

 

소설 <울지 않기>는 두 명의 실존 인물의 교차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한 명은 프랑스 태생의 보수 가톨릭 작가인 조르주 베르나노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절대자유주의(아나키즘)가 물결치던 뜨거운 여름의 추억을 간직한 작가의 어머니 몬세다. <울지 않기>는 물론 사실이면서, 작가 리디 살베르의 소설화의 과정을 거친 이중적 구조다. 시공간적 배경은 1936년 7월의 에스파냐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을 필두로 한 일단의 군인들이 공화정 에스파냐를 무너뜨리기 위해 쿠데타를 감행했다. 정당한 선거로 선출된 민주주의 정부를 뒤집기 위해 집결한 과거 수백 년 동안 에스파냐를 지배해온 기득권층은 군부와 결탁해서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원하는 이들의 꿈을 짓밟기에 나선다.

 

훗날 엘 카우디요라 불리게 되는 프랑코와 그를 지지하는 팔랑헤당이 주도하는 백색공포가 주도하는 야만의 시대가 이베리아 반도를 덮친다. 왕정주의자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조르주 베르나노스는 국민군이 도처에서 저지르는 만행과 그들의 죄를 사해주는 데 전력한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의 이중성에 분노하기 시작한다. 한편, 1936년 당시 열다섯 살의 소녀였던 몬세는 마음과 정신의 혁명시기에 아나키스트였던 오빠 호세의 영향으로 진정한 인격체로 거듭나게 된다. 그 후 육십년이라는 시간과 삶의 무대가 에스파냐에서 프랑스로 바뀌어 치매로 이젠 정신마저 오락가락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뜨거웠던 그 여름의 체험을 그녀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게 되었다. 소설은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정당한 분노를 들줄 삼고, 혁명과정에서 나어린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해 가는 몬세의 경험을 씨줄 삼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전진한다.

 

몬세의 오빠 호세와 후안(프롤레타리아 계급이다)을 중심으로 한 일단의 청년들은 공화국의 대의에 찬동하면서 파시즘에 대항한 정의로운 전쟁과 급진적 개혁안을 선포한다. 하지만 유년시절부터 호세의 라이벌이었던 대지주 계급 출신의 디에고 부르고스 오브레곤은 칼 마르크스 이론에 경도된 공산주의자로 변신해서 호세와의 대립각을 이어간다. 시스템의 의존하지 않은 혁명가의 공허한 구호는 일시적으로 대중을 선동하여 현혹시킬 수 있어도, 대중은 본능적으로 현실적인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냉철한 이성으로 무장한 디에고는 감정을 절제하고 절대자유주의가 양산할 무질서를 비난하면서 질서와 규율을 강조하며 호세의 주장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에스파냐의 이름 없는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호세와 디에고의 대립이라는 미시적 대결구도를 통해 아나키즘과 사회주의 진영의 규합으로 이루어진 이질적 결사체였던 에스파냐 공화국의 당시 현실을 작가는 예리하게 분석해낸다. 고도로 훈련되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파시스트 국민군과의 치열한 내전을 앞둔 상태에서 상이한 두 집단의 화학적 결합 없는 상태에서 공화국의 미래는 이미 결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에스파냐 내전의 추악한 진실 폭로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어떻게 그가 믿는 신을 추종하는 사제들이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 마구잡이로 숙청한 파시스트들의 피 묻은 손의 죄를 사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서방세계의 지식인들이 진실을 외면해도 그의 증언은 계속된다. 극한에 도달한 이데올로기 투쟁의 끝에서 베르나노스는 광신의 단면을 목격하기에 이른다. 공화군에 대한 국민군의 반란을 디에고의 고모인 도냐 푸라로 대표되는 우파는 성전이자 십자군 전쟁으로 간주했다. 내전에서 패배한 적들에 대한 국민군의 배 가르기와 참수는 일상적인 처벌이었고, 심지어 포로가 된 죄수의 거세도 있었다고 한다. 공화파 역시 대지주 계급과 사제들에게 국민군 못지않은 만행을 저지른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일설에 따르면 7,000명 정도의 사제들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다만 그들의 행동은 사진이라는 형태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남아 역선전의 자료 널리 활용되었고, 팔랑헤당과 국민군의의 그것은 어둠 속에서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행해졌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해방구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국제여단 출신의 프랑스인 앙드레 말로(진짜 앙드레 말로가 아니다)와의 격렬한 사랑의 폭풍이 지나가고 난 뒤, 몬세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녀와 동행했던 호세 역시 ‘올바른 대의’를 위해 비무장한 사제들에게 저지른 잔학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어대는 절대자유주의자들의 대화를 듣고 환멸을 느끼고 귀향을 결심한다. 외국에서 반파시즘 전선에 동참하기 위해 에스파냐로 온 국제여단의 허상을 호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최신 무기로 무장한 국민군과 싸우기 위해 열정과 드높은 의기를 가지고 죽음의 전선으로 떠나는 청년들의 모습에 선각자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느낀 것과 같은 동일한 감정을 호세는 체험하기에 이른다. 혁명이 그들의 삶의 구원해 주리라는 기대는 결국 환상이었던 걸까. 조르주 베르나노스와 몬세의 증언이 균형을 이루던 지점에서 이탈해서 소설은 급속하게 후자의 이야기 속으로 가속하기 시작한다. 고향에서 임신한 몬세의 과거를 묻지 않고 결혼하기로 결심한 디에고 가문과의 결혼잔치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던 당시 에스파냐 현실정치의 축소판에 다름 아니었다. 에스파냐 내전에서 공화파들의 운명처럼 호세와 디에고 그리고 몬세의 삶 역시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지난 세기 베트남 전쟁과 더불어 인류 양심의 시험장이라 불렸던 에스파냐 내전을 80년 만에 다시 문학적으로 부활시킨 <울지 않기>를 읽으면서 비슷한 체험을 했던 우리의 역사가 연상될 수밖에 없었다. 리디 살베르는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의 육성 진술과 조르주 베르나노스라는 지식인의 양심고백이라는 방법을 통해 에스파냐 내전의 실체에 조심스러운 접근을 시도한다. 역사적 사건이기에 독자는 내전의 진행과 결말에 대해 알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삶의 진실이라고 믿는 가치를 위해 싸운 이들의 잊혀진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책에 소중하게 담아냈다. 리디 살베르의 <울지 않기>는 엄혹한 역사의 진실 앞에서 나는 어느 편에 서 있는지 그렇게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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