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과 대니 - 그래픽노블, '진짜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그 성장의 기록
진 루엔 양 지음, 이청채 옮김 / 비아북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 긴 분량의 장편소설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도통 짬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고육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그렇다면 그래픽노블을 읽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래픽노블이라고 해서 단순한 만화가 아니었다. 마스다 미리 작가의 책도 좋지만, 작년엔가 나온 비아북의 <의화단>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의화단>의 저자가 먼저 내놓은 책이 있다고 해서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물론, 진 루엔 양 작가의 자전적 그래픽노블인 <진과 대니>에 앞서 <의화단>을 먼저 읽었지만 리뷰 순서는 뒤로 밀리게 됐다.

 

먼저 표지에 있는 <American Born Chinese>란 글에 눈길이 갔다.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 사람들을 흔히 ABC라고 부르는데, 그 연원이 떡하니 크게 박혀 있는 게 인상적이다. 그리고 책의 시작은 책 좀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삼장법사와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의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손오공은 갖가지 비술을 배워 불세출의 동양판 슈퍼히어로지만, 자신이 원숭이라는 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신선들의 파티에서 봉변을 당하고 깽판을 치다가 자유자를 만나, 500년 동안이나 바위산에 갇혀 있다가 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던 삼장법사의 첫 번째 제자가 되는 일련의 과정이 진 왕/대니의 미국 생활과 더불어 펼쳐진다.

 

진이면서 진짜 미국 사람인 대니가 되고자 하는 정체성 혼란을 겪던 청소년기 자신의 이야기를 현실과 가공의 서유기에 투영해서 만들어진 <진과 대니>에는 새겨볼 상징들이 차고 넘친다. 약방의 할머니 말처럼 <아메리칸 드림>의 전설은 되고자 하는 것은 무슨 될 수 있다는 것과 동시에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영혼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메피스토펠레스와의 위험한 거래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는다. 내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정체성을 버려여 한단 말인가. 꼬마 아이에게는 풀 수 없는 난제 같은 숙제는, 자유자의 손바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손오공의 운명과 묘한 공명을 이루고 있다.

 

역시 만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야말로 <진과 대니>에서 진 루엔 양 작가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 본다. 미국 여자친구와 만나고 머리도 곱슬거리는 게 멋지다고 생각하는 대니가 되고 싶지만, 자신의 본성은 중국에서 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친키'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진 왕은 삼장법사를 만난 손오공처럼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자신의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정체성을 극복하는 방법일까. 다인종사회인 미국에 정착한 수많은 삶들이 스스로에게 되묻곤 하는 질문을 진 루엔 양은 동양의 고전 <서유기>와의 퓨전 해석을 통해 독자에게 들려준다.

 

이 나이를 먹도록 진짜 나는 누구인가하고 물어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사람은 어떤 특별한 환경 속에서 그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게 아닐까. 진 루엔 양 작가처럼 미국에서 자란 중국 사람이라는 캐릭터라면 몰라도 한 나라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고 자라 보통의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그런 고민이 과연 있을지 궁금하다. 아니 어쩌면 그런 절박한 고민이 없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가지고 문학 작품으로 형상화해낸 이들의 글을 열심히 읽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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