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가레스 하인즈 글.그림,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원전 읽기가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그래픽 노블만한 게 또 있을까. 이십대에 세계정복에 나선 알렉산드로스가 즐겨 읽었다는 <일리아드>, <오디세이> 두 편 모두 대강의 이야기는 알고 있으나 너무 어려서 읽은지라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트로이 전쟁 전편에 해당하는 것이 <일리아드>라면, 이타카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20년간의 험한 여정 끝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일련의 과정을 그린 것이 바로 <오디세이>란다. 이천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험난한 대모험을 가르켜 오디세이라 부르는 걸 보면 역시 서구 문화의 원류가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리스 고대영웅 서사시로만 알려졌던 <트로이 전쟁>이 독일 출신 슐리만의 발굴로 비로소 역사의 단계로 진입하게 된 것을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스 최고의 미녀 헬레네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납치하게 되면서 발발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실상은 그리스 세계와 동방 트로이 간의 무역전쟁이 원인이 된 10년 전쟁이었다고 한다. 아가멤논과 오쟁이진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가 주축이 된 그리스 원정군은 막강한 트로이를 상대로 10년이나 전쟁을 질질 끌다가 결국 오디세우스의 지략을 이용한 트로이 목마 전략으로 트로이를 멸상시키게 된다. 그리고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리스 신들은 언제나 그렇듯 인간의 운명을 뒤바꾸어 놓았다.

 

성경에도 나오지만, 갈대아 우르 지방에 살던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계시에 따라 낯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다시 말해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방으로의 이주를 결정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시대에 자기가 속한 씨족을 떠나 물설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기업을 구축한다는 건 어쩌면 죽음을 각오한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아브라함은 물적 토대라도 있었지만,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는 그런 것 하나 없이 트로이를 떠나 생사를 넘나드는 모험에 뛰어든다. 물론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자 외눈박이 거인 괴물 키클롭스 족의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고 달아나면서,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본명을 밝히면서(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신인 포세이돈이 몰랐을 지도 없겠지만) 스스로 화를 자처한다. 그래서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이 그의 귀환을 허락했을 때도, 유일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바닷길을 지배하고 있던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갖은 방법을 사용해서 방해한다.

 

한편, 이타카에서는 오디세우스의 아름다운 아내 페넬로페에게 부군인 왕은 이미 죽었고 자신과 결혼해 달라는 수많은 구혼자들에게 둘러 쌓여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뻔뻔하기 짝이 없는 무리들은 오디세우스의 재산을 축내면서 매일 같이 축제와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도대체 당시 이타카의 왕권은 그 정도 밖에 안되었다는 말인가. 어디 왕위계승권자도 아닌 자들이 나서 왕비를 위협한단 말인가. 어쨌든 그런 상황 속에서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장으로 떠나던 시절 젖먹이였던 아들 텔레마코스는 장성해서 아테나 여신의 도움을 받아 오디세우스를 찾아 나선다. 참고로 아테나 여신은 트로이 전쟁 이래, 오디세우스의 수호신으로 그를 몇 번이고 죽음의 위험에서 구해낸다.

 

신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수호를 동시에 받는 오디세우스는 숱한 난관을 겪으면서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꿈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은 인류의 소망인 희망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덧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영웅 오디세우스의 얼굴에는 영욕의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나타났지만 그런 시간조차 영웅의 기개를 꺾을 순 없었다. 초한대전에서 유방에게 처참하게 패한 항우는 마지막 전투였던 해하싸움에서 지고, 다시 오강을 건너 강동으로 건거나 권토중래하라는 촌로의 권고에 어찌 강동의 자제 8,000명을 잃고 무슨 낯으로 그들의 부형을 만나겠냐며 자결하는데, 이타카의 젊은이들을 이끌고 트로이 전쟁에 나갔다가 단신으로 귀환한 영웅에게는 그런 수치심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의 안중에는 오로지 자신의 무사귀환만이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오디세이>를 비롯한 모든 영웅서사시와 신화에 등장하는 것처럼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기, 즉 터부는 모두 깨지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트리나키아 섬에서 태양의 신 헬리오스(아폴론?)의 신성한 소를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금기 역시 오디세우스 부하들이 굶주림 때문에 결국 깨지게 되고 결정적으로 그 숱한 고난의 시절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 한 순간에 바다의 제물이 되고 만다. 어느 금기고 인간의 부주의함 때문에 깨지게 되어 있고, 그에 따른 고난의 수순은 이미 예정된 대로 진행된다. 아이들이 하지 말라는 일은 기를 쓰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네 삶의 서사 가운데 일부는 고대 신화에서 비롯된 금기와 절제의 미덕을 지키지 못해 생기는 갈등의 연속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웅서사시 <오디세우스>의 전반부가 그런 고난의 기록이었다면, 후반부는 마침내 신들로부터 고향으로의 귀환을 허락 받아 마침내 이타카에 도착한 오디세우스의 복수로 점철된다. 아들 텔레마코스와 자신에게 여전한 충성을 맹세한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와 필로이티오스 같은 노병을 이끌고 마지막 승부에 나선다. 역시 신의 수호를 받는 오디세우스는 파리떼처럼 달려드는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을 특유의 기지와 녹슬지 않은 용맹함으로 물리치고 마침내 기나긴 서사시를 완성한다. 그리고 이타카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문학을 통해 마침내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오디세우스>에는 후세에 수없이 반복되는 다양한 형태의 문학적 클리셰이의 원형들이 차고 넘친다. 세이렌의 치명적인 유혹, 로터스의 열매를 먹고 모든 것을 잊고 현재에 만족하게 된다는 되는 마법, 마녀 키르케가 알려준 죽은 자들의 땅에서 망자 테이레시아스의 예언, 금기(터부)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신의 처벌, 영생을 주겠다는 칼립소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오디세우스의 인간의지 등 우리네 삶의 원형적 서사의 가히 모든 것이 그대로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미국 출신의 그래픽 노블작가 가레스 하인즈는 바로 이런 다양한 서사의 보물창고인 영웅서사시 <오디세이>를 원전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운 스타일로 독자들에게 풀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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