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버마 - 금지된 자유의 땅 버마로 간 NGO 부부의 버마 견문록 카툰 클래식 12
기 들릴 지음, 소민영 옮김 / 서해문집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우연한 기회가 알게 된 기 들릴의 카툰을 아주 재밌게 읽고 있다. 사실 <굿모닝 예루살렘>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굿모닝 버마>를 먼저 다 읽게 됐다. 작가의 전작 중에는 <평양> 좌충우돌 방문기도 있다고 하던데, 이 책은 절판이 돼서 구할 수가 없나 보다.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의 아내를 따라 전 세계를 누비는 캐나다 만화가 기 들릴의 버마 방문기를 읽으면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원제는 <버마 연대기>로 아마 출간되면서 굿모닝 시리즈로 이름이 확정된 모양이다.

 

원래 과테말라로 갈 예정이었으나, 버마로 오게 된 기 들릴 부부의 일상을 작가는 그리고 있다.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의 아내 나데주는 주로 일 때문에 바쁘고 주인공 기 들릴은 아들 루이스의 육아에 여념이 없다. 보통 아내가 집에서 육아를 책임지고, 남편이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시스템과는 반대라고나 할까. 작가도 말했지만, 버마(미얀마라고도 불린다)에 사는 외국인들의 지위는 좀 특별하다. 어쨌든 버마 사람들보다 소득 수준이 높다 보니 아무리 봉사를 하러 버마에 온 이들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보다 월등한 생활을 하기 마련이다. 아이 보는 보모도 두고, 경비도 두고 그런 걸 보면 말이다.

 

북한과 더불어 아시아에서 유례없는 군부독재 정치 치하의 버마는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으로 정전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러니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는 서양 사람들이 버마의 습하고 뜨거운 열기를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작가의 불평 중에는 언론의 자유 없는 검열 통제 정책도 빠지지 않는다. 유신 시절 국내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의 실체를 알기 위해 외국 언론에 의존해야 했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기사 삭제로 너덜너덜해진 외신과 버마 군부인사들이 참가한 행사소식을 전하는 국영 매체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작가도 나중에 버마를 방문한 친구가 자신의 사진과 이름을 실명으로 표기한 기사를 내보내면서 필화를 겪을 뻔한 체험담도 진솔하게 공개하고 있다. 버마를 떠나면 그만인 자기보다, 자기와 함께 애니메이션 공부를 하던 버마 친구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에서 이방인의 인도주의 정신이 빛났다고나 할까.

 

인터넷 필터링은 기본이고, 어처구니없는 일로 재판을 받고(어떤 경우에는 재판도 없이) 처벌받는 일이 다반사인 독재국가의 모습을 작가는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다. 이런 점에는 편견 없는 팩트 위주의 기술이 마음에 들었다. 버마의 에너지 위기에도 불구하고, 다국적 에너지 기업인 토탈이 버마 인근해에서 가스를 시추해서 태국으로 보내, 그곳의 경제에 이바지하는 역설도 빼놓지 않는다. 버마 소수민족에게 의료지원을 하기 위해 다양한 봉사단체들이 버마-태국 국경의 카렌, 카친족들을 돕고자 하지만 버마 군부는 까다로운 조건들을 내세워 서류작업으로 그들의 업무를 지연하고 방해한다. 국가가 해야할 일을 그런 단체에게 미룬다고 기 들릴은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기 들릴 작가가 버마에 체류하던 당시 여전히 가택연금 중이었던 아웅산 수지 여사의 이야기도 간간히 소개된다. 수십년간 무소불위의 독재권력을 행사해온 군부에 맞서, 15년 넘게 망명을 거부하고 가택연금을 받아들인 야당 정치인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지하는 버마 사람들의 이야기도 작가는 소상하게 들려준다.

 

그런 정치적인 이야기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업을 위해 중국산 잉크를 사러 시장에 나갔던 이야기, 바간과 미치나 등 버마 각지를 직접 여행한 이야기, 또 인근 태국 여행을 바탕으로 인접해 있지만 너무 다른 두 나라에 대한 재밌는 짤막한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는다. 왕국인 태국 극장에서 국왕 부처의 사진이 등장하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는데 외국인 작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음료수와 팝콘을 즐겼다는 그런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메뚜기 구이를 먹는 법도 소개해 주고, 불교 국가인 버마의 종교 관련 에피소드, 서로를 축복하는 의미에서 행해지는 물 축제 등등 이색적인 체험기가 <굿모닝 버마>를 장식한다.

 

악명 높은 사회주의 국가로 자신들은 미얀마로 국호를 부르고 있지만, 서양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작가는 소개한다. 미신적인 이유로 해서 통용되는 지폐 단위를 십진 단위로 하지 않는다는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아마도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인해 서방 세계의 무력 제재를 두려워해서인지, 버마 군부는 기존의 수도인 양곤에서 내륙 도시 네피도로 옮기는 천도를 국민들의 의견도 묻지 않고, 일부 국가 지도자들의 독단적 결정에 따라 일사천리로 처리해 버린다. 독재 때문에 세계 각국으로부터 경제제재도 받고 있지만, 소규모이긴 하지만 석유 및 천연가스, 구리, 주석, 텅스텐, 철광, 석회석 같은 풍부한 천연자원을 중국에 수출하면서 서방세계의 경제제재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버마를 떠나기 전에 작가는 마지막으로 명상을 통해 참선과 수행을 배워 보는데 도전하지만 보기 좋게 이틀 만에 포기해 버린다. 서양인의 사고로, 선순환하는 동양 철학을 이해하기란 난망했을 것이다. 버마 행상 아주머니가 파는 주스의 위생을 지적하고, 토사물을 먹고 자란 뱀장어 요리를 먹는다는 사고의 연결이 여전한 서양식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고의 발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 들릴의 버마 이야기를 보고 나니, 더더욱 그가 그린 <평양>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구하기 힘든 책일수록 더더욱 궁금해지니 언젠간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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