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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 여자 - 최민석 연애소설
최민석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5월
평점 :
문득 요즘 즐겨 읽고 있는 최민석 작가가 낸 책들의 출판사를 꼼꼼히 살펴보니 다 다르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보통 작가로 데뷔하고 나면 한 출판사에서 줄곧 책을 내지 않나?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어쨌든 <능력자>에서 자신의 페르소나인 ‘작가’를 투입해서 서사를 풀어 나가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는데, 역시 이번 연애소설의 주인공도 작가다. 후기에선가 직접 말한 것처럼, <능력자>나 최근에 출간된 소설집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와는 다른 좀 더 진중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본인이 직접 밝혔듯이 <쿨한 여자>는 단편을 확장한 요즘 유행인 경장편 분량의 연애소설이다.
해마다 책을 한권씩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는 최민석 작가의 연애소설은 확실히 전작 <능력자>와 다른 궤도를 지닌다. 전작에서 얼토당토 않은 캐릭터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했다면, 이별했지만 심정적으로는 전혀 그러지 못한 소설지망가 경도진의 그녀에 대한 미련이 중심에 서있다. 여느 평범한 연애소설처럼 출발은 비슷하다. 7살 어리지만 재기발랄하고, 헤어진 후에야 비로소 그 누구보다 예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나”의 고백에 힘입어 예전의 추억들을 더듬기 시작한다.
작가의 서사는 독자로 하여금 내러티브에 집중하게 하기보다 그들도 삶의 어느 순간에 만났던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의 추억을 되살리게 만든다. 아니 어쩌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야말로 작가가 진짜 쓰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는 선언은 주인공과 주인공의 그녀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랑하면서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그녀를 떠나보내야 했던 남자의 미련 혹은 후회가 진한 아메리카노 커피향처럼 그렇게 무시로 감상을 자극한다.
역시나 문학적 클리셰이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방적 통고와 함께 떠난 그녀와의 재회는 필연일 수밖에 없다. 누가 쿨한 여자냐고? 물어볼 것도 없이, 그렇게 주인공과 헤어지고 난 뒤에 사랑을 찾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나선 그녀가 스스로 쿨하단다. 그러니 자신의 주장과 현실의 괴리가 뒤따라 올 수밖에.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행동이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야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으로 보이겠지만, 한발짝 뒤에서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그만큼 피곤한 스타일도 없을 것 같다. 이런 의미 없는 훈수야말로 연애소설을 읽는 재미가 아닐까. 하긴 또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무슨 의미를 찾겠는가.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계속해서 자신과 자신을 비판하는 문우(文友)가 의미 없는 소설/글쓰는 글쟁이라고 쉴 새 없이 방어기제를 돌린다.
모름지기 문학을 하는 이들을 이래야 한다는 사명감에 제주도 강정길에서 만난 시인과의 인연이 추가되면서 또 다른 잠재적이면서, 점진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실재적 이별에 이르는 과정이 주인공과 그녀 사이에 내던져진다. 도대체 헤어진 그녀가 언제 어디서 튀어 나와 고요한 주인공 삶에 파문을 던질지 궁금해진다. 마치 장기판에서 다음 수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장기꾼의 심정이라고 할까.
제주도가 전초전이었다면, 다음 공간적 배경은 나가사키다. 역시 차이나타운으로 유명한 나가사키에 갔다면 짬뽕을 빼놓을 수 없으리라. 운명이라는 개연성을 투입해서 결국 나가사키행 비행기에서 그녀와 다시 해후한 나는 그녀와 만날 생각에 곁에 있는 시인에게 잠별이니 점별이라 부르면서 이별을 준비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만나 무얼 해보겠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생각보다 몸이 가는 대로, 어떻게 되겠지 하는 그런 대책 없음이라고나 할까. 시인과 같이 짬뽕을 먹으면서 고작 십여분 정도 되는 그런 시간에 자신의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나가사키 짬뽕에 담긴 각종 해물과 기타 식재료에 대한 찬란한 비유를 통해 ‘동물성’ 짙은 페이소스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주인공의 부질없는 떡타령에 뒤이은 빠블로 교수님의 발길질 세례는 예견된 분노의 발로였노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의미를 찾는다. 사랑을 하면서도 너는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앞으로 우리의 관계는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혹은 상대방에게 묻는다. 그런데 최민석 작가는 너무나 현실적인 연애소설 <쿨한 여자>(라고 쓰고, 쿨하지 못한 여자라고 읽는다)에서 그런 의미타령이 무의미한 것이라고 소설의 곳곳에서 훈수를 던진다. 소설 속의 관계는 어느 지향점을 향해 가지 못하고, 자신이 너무나 사랑한 그녀 때문에 어떤 글도 쓰지 못한다고 핑계를 능수능란하게 제조한 경도진의 삶처럼 그렇게 부유할 따름이다. 아니 어쩌면 더 솔직하게 이렇게 묻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 모든 게 너에게 무슨 의미인데?’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탈출구로 시간은 고스란히 흘러간다는 고전적 수법을 채용한다. 하긴 이것보다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현실적 대답도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