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니 스토리 Tiny Stories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누구나 사랑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꿈꿀 것이며, 울고불고 싸우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사랑도 있을 것이며, 철저하게 계산된 사랑이라는 미명을 동원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우리의 영미 씨처럼 쾌락을 동반한 육체적 사랑이야말로 사랑 중에 으뜸으로 치는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사랑은 누구나에게 다른 얼굴로 찾아온다는 말이다. 그러니 사랑에 옳고 그름이 있을 리도 없겠다. 모두가 그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

 

개인적으로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권 이상의 책은 읽어봐야 그 작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이번 경우에는 독서모임 때문에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루이스 세풀베다나 혹은 로베르트 볼라뇨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암튼 내가 처음으로 읽은 영미 씨의 <솔뮤직 러버스 온리>에 이어 바로 비교적 근간인 <타이니 스토리>를 읽었다. 작가가 독자에게 선사하는 달달하다가도 여지없이 뒷통수를 때리는 그런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한 다발의 사랑에 관한 단편소설 종합세트다.

 

<솔뮤직 러버스 온리>만으로는 영미 씨가 남자밝힘증의 대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타이니 스토리>에서는 딱히 또 그런 것만도 아니라고 토로한다. 그렇지, 아무리 연애소설로 먹고 사는 작가라지만 그럴 리가 있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주무기를 내려놓은 건 아니다. 저자 후기에서 밝혔다시피 어떤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쓴 게 아니라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쓴 이야기들의 집대성이다. 이렇게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고, 그 글을 꾸준하게 소비할 수 있는 두터운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는 게 영미 씨의 자랑이 아닐까.

 

언제나 그렇듯, 단편소설은 다른 것에 우선해서 특별한 캐릭터가 필요하다. 긴 호흡의 장편처럼 시간과 공간 같이 부수적인 요소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설명한 겨를이 없다. 그러니 독자의 시선을 집중할 만한 보통을 능가하는 캐릭터가 필요하단 말이다. 그래서 전신주 씨가 등장하고, 유명 소설가와 친해지지만 그 소설가가 자신이 들려준 비운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의 소재로 써먹는 그런 비열한 캐릭터도 무시로 등장한다. 우리의 경우도 비슷하겠지만, 일본 열도에서도 역시 주둔 중인 미군 GI와 화끈한 사랑을 꿈꾼 묘령의 아가씨들도 많이 있는가 보다. 어쭙잖은 도를 내세우는 이율배반적인 나라에서라면 손가락질 받을만한 그녀들의 무용담이 이웃 나라에서는 흥미진진한 문학의 소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어째 우리나라에는 영미 씨 같은 작가가 없단 말인가, 오호 통재라.

 

어린 시절의 자신에 대한 왕따를 주동하던 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접근했지만, 그 친구 역시 전학가서는 왕따 당했다는 말에 치솟아 오르던 분노가 수그러드는 상황에 당황해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네 일상의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항상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면서도, 막상 상대성은 철저하게 부인하는 내 모습을 그녀의 소설에서 보게 될 줄이야.영미 씨의 모든 소설의 내용과 부합할 수는 없겠지만 이야기의 모퉁이에서 순간마다 마주치는 삶의 진실은 왜 그녀가 이런 작은 이야기에 정성을 들였는지 알게 해준다.

 

영미 씨가 의도대로 쓴 것이 분명한 두 개의 연작 단편도 인상적이다. 미국 유학 출신의 페미니스트 강사는 역시 교수로 재직 중인 미국인 남편과 떨어져 살면서 자유연애를 만끽한다. 평소의 페미니스트답지 않은 행동을 일삼으며 복종의 쾌락을 추구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남학생 제자와의 일탈을 즐긴다. 두 개의 이야기가 동전의 양면처럼 딱 들어맞는 장면에서는 감탄할 수밖에. 영미 씨에게 포 트웬티(four-twenty)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수 배웠다.

 

군인이었던 남편을 배려하는 마음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 일본인 배우자의 이야기도 새겨 들을만하다. 너무 올바른 삶은 나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까지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에 도달한다.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성가시고 짜증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여러 면에서 영미 씨의 <타이니 스토리>는 읽을 만한 책이다.

 

나중에 오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누군가 영미 씨의 <타이니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는 말을 듣게 되면 나의 뇌리에서는 어떤 기억이 남아 있을까. 첫 경험이었던 <소우루>만큼의 강렬함은 없겠지만, 그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그야말로 작은 이야기들이 기억나지 않을까? 영미 씨는 무책임하다고 말하지만, 작은 이야기에도 나름의 소리와 울림이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그래서 반가워, <타이니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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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3-10-07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섯 권까지는 아니더라도 특히 작가에게 나쁜 평가를 내릴 때에는 더더욱 몇 권 읽어봐야할 것 같아요. 그나저나 저 책은 표지가 원서인 줄 알겠어요^^;;

레삭매냐 2013-10-08 10:41   좋아요 0 | URL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읽어야할 책은 너무 많고
불완전한 존재가 읽는 속도는 너무 더디기만 한 것 같습니다.

저도 책 처음에 보고 원서라고 착각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