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오래전 교보문고 매대에서 이 책을 봤다. 이 책의 제목을 들여다 보면서 애완동물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이 책은 애완동물에 대한 책이 아니다) 애완견 기르기에 대한 책인가 하고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시절에 책을 사서 읽진 않았다. 아주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이 책이 절판의 운명에 처한 다음에야 그리고 그의 신간 <메이드 인 차이나>를 보고 나서야 <개를 돌봐줘>를 읽게 됐다. 결국 책과의 인연은 그렇게 가는가 보다.

 

프랑스 출신의 작가 장 미셸 에르의 데뷔작 <개를 돌봐줘>를 읽으며 우리나라 천명관 작가가 떠올랐다. 비범한 데뷔 소설로 문학계에 뛰어 들었지만, 어째 그 후로는 그만 못하다는 느낌이랄까. 장 미셸 에르의 경우에는 후속작 <메이드 인 차이나>와 너무 비교가 된다. 조국 프랑스에서 벗어나 중국까지 아우르는 글로벌한 스케일이지만 파리의 한 골목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룬 <개를 돌봐줘>만 못하다는 생각이다.

 

소설은 초반 둘르 불레트 가에서 벌어지는 서로 앙숙인 이웃 간의 치열한 전쟁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라디오 방송작가 막스 코른느루와 달걀 아티스트 으젠 플뤼슈는 그야말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그저 그들의 진흙탕 싸움이 치열할수록 독자들은 즐거울 따름이다. 한쪽이 장군을 부르면, 다른 한쪽은 멍군을 부르는 공격과 방어전을 어쩌면 이렇게 재미지게 구성하는지 신예 작가답지 않은 노련함에 책을 읽을수록 빠져든다. 마치 천명관 작가의 <고래>를 읽을 때처럼.

 

, 그럼 이 유쾌한 소설의 제목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주인공 중의 한 명인 막스 코른느루가 이웃 브리숑 부인의 애견 엑토르를 <파리의 노트르담> 상자로 죽이고 그 사실을 숨기면서 롤러코스터 전개가 펼쳐진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관리인, 편집증으로 똘똘 뭉쳐 기괴한 영상을 재창조해내는 자모라 감독, 아파트의 꼬마 말썽꾼 브뤼노 등등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이 소설을 다채롭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그렇지만, 한바탕 소동 끝에 브리숑 부인이 번지 점프로 죽으면서 <개를 돌봐줘>는 미스터리물로 방향을 튼다.

 

이 사건을 맡은 타뇌즈 반장이 사실은 경찰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을 지경이다. 브리숑 부인이 누군가에 의해 타살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노력하던 투톱 주인공 으젠 플뤼슈마저 시체로 발견되면서, 그와 가장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막스 코른느루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너무 당연한 설정인가? 홀로 남은 막스가 힘들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며 도대체 누가 범인인가로 독자를 인도한다.

 

사소한 이웃 간의 다툼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살인사건 그리고 연이은 대폭발로 모두 13명이나 되는 세입자들을 날려 버리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후반에 가서 이런 결말로 이야기가 끝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물론 범인은 우리가 아는 범주의 인물이다. 누구나 다 범인이 될 수 있고, 또 아닐 수도 있다. 바로 그 점에 미스터리/서스펜스의 재미가 있다. 게다가 서사의 주인공 역시 필요에 따라 무대에서 곧바로 퇴장시킬 수도 있다. 유머로 시작해서,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설정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사실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일에 삐져서 상대방을 골탕 먹이는 일에 열중하는 막스와 으젠의 전투 전개 과정은 너무 재밌다. 무지막지하게 많은 피자 배달을 시키고, 남우세스러운 야릇한 잡지구독신청은 차라리 귀엽기까지 하다. 부적과 주술에 능한 도사로 포장해서 끝없는 전화공세에 시달리게 하는 수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양념처럼 등장해서 기괴한 시를 읊조리고, 극한의 말썽의 선보이는 꼬마 악동 같은 이웃의 배치도 마음에 든다. 이런 유머를 곁들인 소스를 후반부에 준비된 앙트레에 흩뿌리는 장 미셸 에르의 기법은 탁월하다. 소설의 곳곳에 배열된 캐리커처와 스케치는 상상만으로 부족한 부분을 곧잘 채워준다.

 

장 미셸 에르의 <개를 돌봐줘>는 대중소설이 지녀야할 모든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다. 유머스러운 이웃 간의 전쟁에서 시작해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미스터리로 전환되고, 살인범의 정체를 쫓는 서스펜스까지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은 순 없을 것 같다. 물론 결말은 온전하게 작가가 지배한다. 뛰어난 추리소설 팬이라면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알겠지만, 나같은 보통의 독자에게 그건 무리가 아닐까 싶다. 그저 작가가 먹여 주는 대로 스푼에 담긴 달콤쌉싸름한 시리얼을 소화해내면 될 테니까. 그것으로 만족한다.

 

빛나는 데뷔작의 아우라 때문에, <메이드 인 차이나>에서는 조금 실망했지만 여전히 장 미셸 에르에 대한 미련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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