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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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 <완득이>를 보지 못했다. 그러니 김려령 작가의 글은 처음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동안 청소년 문학을 주로 발표해 왔다고 하는데, 신작 <너를 봤어>는 그녀의 온전한 첫 번째 성인소설이다. 책을 읽는데 무언가 도움이 될까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더니 신작 발표 즈음한 기자간담회에서 인생을 좀 아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말로 신작을 소개했다.

 

<너를 봤어>에는 잘 나가는 소설가 유지연과 결혼한 전직 소설가이자 이제는 편집자인 40대 중반의 정수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나름대로 성공하고 문단에 알려진 아들을 상대로 삥을 뜯는 어머니에게 시달리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똑 부러진 며느리 역시 개천에서 용을 산 거지, 개천을 산 건 아니라는 말로 막무가내 시어머니의 삥을 거부한다. 독자는 조금은 일반 가정사 같지 않은 갈등 구조에 호기심을 비치기 시작한다.

 

이내 주인공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주 서영재에게 마음을 홀랑 빼앗긴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나이 마흔 여섯 살에 찾아온 첫사랑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거 불륜 서사의 시작인가? 나의 착각이었다. 달랑 6년간의 결혼생활을 끝으로 A출판사의 에이스이자 시대의 흐름에 올라탄 베스트셀러 작가는 이승과 이미 고별한 상태다. 이것을 깨닫는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역시 작가의 설계였다면 탁월하다. 아니면 상황 파악에 늦된 독자의 아둔함 탓이겠지.

 

정수현의 불행하기 짝이 없는 가족사를 하나둘씩 드러내며, 출판계와 문단을 배경으로 한 자못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끼어든다. 물론 제법 단련된 책쟁이가 아니라면 그다지 관심이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그 바닥 이야기가 재밌게 들렸다. 남주 정수현이 비교적 예측가능함을 상징한다면,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여주 서영재는 예측불허의 명랑쾌활로 무장된 캐릭터다. 거기에 두 사람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세 번째 인물로 윤도하까지 더하면 이젠 내용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영화 <Three to Tango>의 제목이 안성맞춤이다.

 

아내와 사별한 정수현은 언제라도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날 수 있는 몸이지만, 개천에서 용을 산 아내는 그럴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영화 <식스 센스>를 연상시키는 곳곳의 장면에서 죽은 아내는 여전히 미친 존재감을 발산한다. 이러니 터무니없는 불륜이 연상되는 것도 당연하지. 다 뛰어 넘어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첫 번째 성인소설로 너무 무거운 전개가 아니었나 싶다. 어쩔 수 없이 타나토스의 포로가 된 남주에게 로코식 해피엔딩을 기대한 것은 무리였을까. 차근차근 설명하는 대신, 미련하고 살벌한 사랑을 선택한 주인공의 마음이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문단과 출판계에 대한 맛보기식 서술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 바닥에 구르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신랄한 이야기를 쓸 수가 있을까? 글쟁이와 출판사의 관계를 사()와 사()의 관계로 표현한 점이나, 엉뚱한 복장으로 엄숙한 수상 식장의 분위기를 휘젓고 다니는 타조 상상은 정말 압권이었다. 글쓰기가 누군가에게는 숨막히는 노동이겠지만, 지상(至上)의 독자에게는 유희이자 오락일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 또한 인상적이었다. 글쟁이와 출판사의 손을 떠나 전국적인 유통망을 통해 독자의 손으로 흘러 들어간 책의 운명은 온전하게 그들의 몫이라는 선언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날로 책을 씹어 먹던, 잘게 찢어 염소 먹이로 사용하든 간에 말이다.

 

다시 한 번 이 미련하고 살벌한 사랑, 다 읽고 나니 마음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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