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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 - 도원(桃園)편 ㅣ 매일경제신문사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1
요시카와 에이지 지음, 이동호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어려서부터 중국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태사공 선생의 <사기>를 필두로 여러 사서를 읽었다. 그중에서도 역시 압권은 정사를 바탕으로 소설적 서사를 그린 <삼국지>였다. 말할 것도 없이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가 아닌 후대의 나관중의 작품을 이른다. 나중에 이문열 씨의 버전을 비롯해서 많은 삼국지를 접했는데, 새해 들어 일본 정본이라고 할 수 있는 요시카와 에이지 버전의 <삼국지>와 만나게 됐다.
총 10권으로 이루어진 이번 시리즈의 시작은 역시 널리 알려진 도원결의다. 망해가는 한나라 황실의 후예라는 현덕 유비(전적으로 그의 주장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운장 관우 그리고 익덕 장비라는 시대의 호걸 세 명이 운명적으로 만나 결의를 하고 도탄에 빠진 억조창생을 구하고, 한 황실을 부흥시키겠다는 것이 이 결의의 근간이다. 그런데 과연 나중의 전개도 그랬을까?
요시카와 에이지는 유비의 인덕과 효성을 강조하기 위해 나관중 판에는 없는 낙양차 사건도 창작해낸다. 불의에 대항하는 인물로 그려지는 유비는 한결같이 백성을 위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하지만, 나중에 알다시피 사랑하는 아우 관우를 동오에 잃고 나서, 정말 하지 않아도 되는 동오정벌이라는 복수전에 나섰다가 대패하고 백제성에서 병사하고 만다. 과연 전란의 시대를 살았던 군주라면 백성의 피폐함을 알고, 도원에서 맺어진 결의에 따른 의리를 위해 굳이 필요 없는 전쟁을 해야 했을까라는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유비 집단은 구체제 봉건주의에 기반한 군벌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 말기, 십상시로 대표되는 지배계층의 부패와 무능력 때문에 끝장난 왕조 한 황실에 황건기의는 결정적 타격을 가한다. 그리고 중국 역사에서 반복되는 군사력에 의거한 군웅할거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난세에 공맹의 가르침보다는 살기 위한 극한의 생존경쟁이 대두하기 마련이다. 시대를 영웅호걸을 부르고, 우리의 주인공 군벌 유비를 필두로 조조, 원소, 동탁 그리고 여포에 이르는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해서 앞으로 펼쳐질 파란만장한 드라마의 시작을 알린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를 읽으면서도 동시에 도서관에서 역시 같은 저본을 바탕으로 극화한 고우영 선생의 <만화 삼국지>도 읽을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한 뿌리이다 보니 전개와 구성의 일치를 점검해 가며 읽는 재미도 느낄 수가 있었다. 지금은 오래돼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이문열 판에 비해, 요시카와 에이지의 ‘역사소설’은 상당히 등장인물 개인에 대한 심리묘사가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령 예를 들어, 소설의 초반에 등장한 홍부용이라는 허구의 인물과 청년 유비의 로맨스 부분에서 다시 전장에 나가 대망을 펼쳐야 하는 유비를 걱정하는 관우와 장비를 그린 장면이 그렇다.
유비와 쌍벽을 이루는 주인공으로 등장한 난세의 간웅 조조에 대한 이야기로 1편은 끝을 맺는다. 기존의 질서를 지키면서 국가를 개조하려고 했던 봉건주의자 유비와 달리 허수아비 황제를 앞에 내세우고 실질적인 건국을 주도했던 조조야말로 <삼국지>의 진짜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하긴 그렇게 엄청난 군상이 등장해서 서로 가진 가치관을 가지고 충돌하는 것이 <삼국지> 같은 역사물이 가진 고유의 매력이겠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고우영 선생의 <만화 삼국지>도 곁들여서 읽으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