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4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정수 미생 4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로 허영만 선생을 꼽는다. 오래전 보물섬에 연재하던 만화로 선생의 작품과 처음 만났던 것 같다. 황당무계하게도 고릴라가 우리나라 프로야구 계를 지배하는 전설적인 타자로 등장한다는 설정이었는데 그야말로 소년들이 좋아할 법한 만화였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허화백의 그림체가 좀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어려서 보던 만화를 끊고, 어른이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그림체가 달라졌다. 거의 모든 분야가 그렇듯 홀로 하는 작업에서 벗어나 문하생을 두고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스템도 만화계에도 피할 수 없는 대세였나 보다.

 

서설이 길었는데 오늘 이야기할 <미생>의 작가 윤태호 작가가 바로 허화백의 문하생 출신이었단다. , 이 정도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 챘겠지? 바로 어디서 많이 본듯한 그림체란 말이다. 이미 그전에 영화로도 소개된 <이끼> 그리고 계속해서 연재 중인 <내부자들>도 그의 작품이다. 전작에 비해 이번 작품 <미생>은 한 때 바둑에 인생을 걸었다 실패하고 보통 사람들처럼 살기 위해 생의 전선에 뛰어든 장그래의 이야기다.

 

전에 나온 3편은 하나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네 번째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바로 웹툰으로 연재 중인 <미생>을 찾아봤다. 지금 장그래는 당당하게 원 인터내셔널의 정식직원이었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파리 목숨 같은 인턴사원이었단다. 어쨌든 피튀기는 살벌한 경쟁을 뚫고 입사하는데 성공한 장그래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윤태호 작가가 본격적인 만화로 들어가기 전에 조금씩 보여 주는 기보로 워밍업을 시작한다. 나같은 바둑에 대해 문외한에겐 별무소용이겠지만 말이다.

 

일단 다 읽고 나서 이제 막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옛 동료에게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었다. 회사 업무 중에서 꽃이라는 영업사원으로 새 출발을 시작했는데, 전 직장에서 제대로 된 OJT도 받지 못하고 바로 현장에 투입되서 그 고생을 한 기억이 그를 나의 기억 속에서 불러냈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도 마찬가지다. 이름처럼 긍정의 대가로 보이지만 그 역시 하나의 인격체로 상처 받고, 도전을 받으며 때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좌절도 하는 우리네 보통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초상이다.

 

어떤 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떨 때 앞으로 나가야할지 아니면 잠복하고 때를 기다려야 할지 그리고 또 그 때를 잡기 위해선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스트레스와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현대인을 오늘을 <미생>은 적나라하게 짚어낸다. 이렇다할 빽이나 스펙 하나 없이 원 인터내셔널이라는 정글에 투입된 장그래는 하나하나가 도전이다. 종합상사원으로 주지해야할 새로운 지식이 쏟아져 나오고, 신입사원의 기본이라는 보고서 작성을 위해 가능한한 줄일 건 모두 줄이라는 구호 아래 한 장의 보고서 작성을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그의 모습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 어려운 입시와 취업을 뚫고 직장에 안착한 이들도 모두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까? 먹고사니즘을 위해 우리에게는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밥벌이가 필요한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 직장에서는 개인의 성취는 모두 승진과 월급이라는 도식으로 귀결되고, 그야말로 커다란 기계 속의 작은 부품처럼 규격화된 개인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큰 조직일수록 하나의 부품이 어긋난다고 해서 공장을 세울 수가 없듯이 언제라도 대체품으로 갈아 끼울 수 있어야 한단다. 물론, 만화에 나오는 회사 생활이 그렇게 삭막 일변도는 아니다. 때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장그래를 다독여 주는가 하면 또 때로는 질식할 정도로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역시 직장은 스트레스 천국이라는 반증일까?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스토리를 윤태호 작가는 한수 전진하거나 후퇴를 거듭하는 바둑에 비유한다. 바둑판에서처럼 우리가 삶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 뚜렷한 존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라는 말처럼 우리네 삶도 그래봤다 한평생... 그래도 한평생이 아닐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 나오는 대로 인간을 창조한 신이 우리의 아등바등 삶을 본다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사족으로, 바둑에 대해 좀 더 알면 이 만화가 더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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