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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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모음집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마지막 장을 덮었다. <앙앙>이라는 패션잡지에 연재된 하루키의 에세이 모음집이라고 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50년도 더 전에 녹음되었다는 전설의 프로코피에프의 음반도 들어 보고 싶어졌고, 노르웨이에서 판매하고 있다는 그 몸에 좋다는 바다표범 생기름도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역한 맛을 견딜 자신은 없지만.

 

책 리뷰에 앞서 먼저 고백할 게 하나 있다. 가장 대중적인 일본 작가 중의 한 명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게 하나도 없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1Q85>, <해변의 카프카> 그리고 <노르웨이의 숲>까지도.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그의 책 중의 몇 편의 기행문과 잡문은 접했지만. 그래서일까? 하루키는 나에게 소설가라기보다 에세이스트로 더 친근한 기분이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역시 나와 하루키의 기묘한 관계의 연장선에서 무시로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제목 한 번 잘 뽑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 년 동안 연재했다는 이 에세이집은 하루키가 나중에 소설에 써먹으려고, 자신만의 소재 창고에 소중하게 수장해둔 비장의 무기다. 글로 독자와 만나야 하는 소설가에게 이야기 수집은 선택이 아닌, 필연의 그것이려나. (하루키에게) 마음 가는 대로 쓱쓱 쓰는 소설쓰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에세이 쓰기는 그의 말대로 확실히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이리라. 어떤 글을 써도 책을 사주는 고정 팬을 지닌 베스트셀러 작가의 에세이 쓰기는 어렵노라는 엄살이 귀엽게 들린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는 하루키가 직접 체험한 에피소드에 대한 자신만의 단상을 양념으로 잘 버무린 샐러드 같은 느낌의 에세이집이다. 그래서 가독성이 무척 좋다. 일면 가벼워 보이는 에피소드의 뒷면에는 사물을 꿰뚫어 보는 탁월한 글쟁이의 내공이 담뿍 담겨 있다고나 할까. 재밌고 읽기 쉬운 글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하루키의 능력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사물의 자세한 부분까지 예리하게 짚어내는 하루키의 시저스 샐러드같은 글은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울림이 있다.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 때문에 꽁한 마음을 풀지 않는 작가의 까칠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출판사가 주최한 파티에서의 어색함보다 차라리 적은 인원이 모인 파티에서 중년부인의 타조사육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든다는 솔직한 고백이 사뭇 매력적이다. 어지간해서는 잘 사인을 해주지 않지만, 간곡하게 부탁하면 마지못해 파인애플 같은 요란한 그림 대신 이름만 방명록에 다소곳하게 적어 놓는 말도 마음에 든다. 지나친 상업화와 치열한 국가대항전이 되어 버린 올림픽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일품이다. 달리기/마라톤에 미친 작가가 미국 나이키 본사에 있다는 전설의 조깅 코스를 직접 뛰어 보았다는 부분에선 마냥 부러웠다. 야구라면 누구 못지않게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나에게 내가 열렬하게 응원하는 팀의 라이벌 3루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유연한 플레이에 대한 극찬에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가슴이 좀 쓰리더라. 오하시 아유미 씨가 그린 양키즈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은 더말할 것도 없고.

 

바야흐로 신나는 여름휴가 시즌이 됐다. 누군가 부담 없이 휴가지에 가서 읽을 만한 가벼운 책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자신 있게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서 발행된 하루키 월드 초대장을 건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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