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여인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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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시중에 풀리기 전에 예판으로 구입을 했다.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에 헤밍웨이와 엑스쿨투라 시리즈 때문에 한 달이나 지나서 마저 읽을 수가 있었다. 신경숙 작가가 8년 만에 새로 낸 단편선이라고 했던가. 후기를 보니 발표하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니라, 스스로의 위안과 치유를 위해 쓴 글이라는 말이 참 인상 깊게 다가왔다. 작가의 내밀한 세계를 엿보는 ‘피핑 탐’(peeping Tom)이 된 기분이랄까. 독자보다 한 수 위인 작가와의 공공연한 공모다.

 

지난 토요일 독서모임에 가는 길에 오후에 팬 사인회가 있다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 읽지도 않은 책을 들고 나섰다. 첫 번째 인스톨은 솔직히 그다지 인상 깊게 다가오지 않아서인지 책에 온전하게 몰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 기대했던 독서모임도 팬 사인회도 어긋났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만난 <모르는 여인들>의 다른 인스톨은 정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단편을 읽다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한 가지 있다. 보통, 단편선에 실린 단편 중에서 제목을 정하기 마련인데 왜 신경숙 작가는 맨 끝에 실린 <모르는 여인들>을 타이틀로 정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마치 미로 속을 헤매듯, 마지막 인스톨을 만나기 전까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맨 끝에서 독자를 기다리고 있던 작가의 후기와 만나기 전까지도. 나와 함께 이렇게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선물이자 그들이 나누는 삶의 총합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야말로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모르는 여인들>의 베스트는 <그가 지금 풀숲에서>라고 생각한다. 이 단편의 서사는 교통사고를 당해 꼼짝없게 된 주인공이 풀숲에 누워 과거를 회상하는 플래시백으로 시작된다. 잘 나가는 온라인 쇼핑몰 기획자인 주인공은 어려서 홀로 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건강이야말로 남편이 없는 가정에서 자식들을 지키기 위한 홀로 남은 어머니의 최후의 보루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강박증을 보인다. 자식들이야 그렇다 치고, 주인공과 결혼한 아내에게 이 억센 시어머니의 존재는 과연 어땠을까. 바로 그 지점에서 갈등의 분절이 시작된다.

 

초반에 주인공의 파경에 대한 설정이 잠깐 소개된다. 어머니의 과거와 주인공의 파경이라는 두 소재가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이야기는 흥미를 띠기 시작한다. 거기에 아내의 외계인손증후군(alien hand syndrome)이라는 의학적 증상이 추가되면서 <그가 지금 풀숲에서>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문득 오래 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SF 소설에서 접했던 통제할 수 없는 왼손에 대한 글이 생각났다. 신경숙 작가도 베르베르의 책을 읽었던 걸까? 기시감을 지울 수가 없다. 하도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외계인손증후군에 대한 기사를 다 찾아보았다. 이게 실제로 존재하는 질병인가 하는 마음에. 그리고 최근에 영국 BBC를 통해 소개된 똑같은 이름의 증후군의 실체와 대면할 수 있었다. 놀랍군!

 

http://www.bbc.co.uk/news/uk-12225163

 

(외계인손증후군의 실제 BBC 방송 사례)

 

상실의 시대에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작가는 시대의 우울과 슬픔을 노련하게 제시한다. 주인공의 플래식백을 읽으며 독자는 이미 왜 아내에게 외계인손증후군이라는 기상천외한 질환이 생겼는지에 대해 대충이나마 파악하고 있지만, 주인공은 미처 모르고 있다. 이런 현실세계에서의 어이없는 괴리야말로 실존적 외로움을 극대화하는 장치다. 소설집에 맨 끝에 실린 <모르는 여인들>에서도 이런 반복은 계속된다.

 

20년 전에 헤어진 옛 연인으로부터 넘겨받은 노트를 읽으며 주인공은 옛사랑의 부인이 남긴 행적을 뒤쫓는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현재 남편도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다. 상처와 회복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재활을 앞둔 마당에 불쑥 나타나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는 남자에게 그녀가 느낀 감정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소설 속의 화자는 다 외롭고, 아프고, 슬프다고 속삭인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감정을 보듬어 줄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작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을까? 나도 속상하고 외롭단다, 그러니 나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주렴.

 

작가의 희망회복 프로젝트의 첫 번째 목표가 감정의 순화였다면, 두 번째는 육체의 회복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섭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경숙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 주목한다. 실연을 당해 야채 삶은 물 밖에 넘기지 못하는 사람도, 흉악한 살인범에게 온 가족을 잃은 외톨박이도 모두 먹어야 이 슬픔을 극복할 수가 있다. 바로 그 순간에 작가는 감칠맛이 도는 앵두화채로, 새벽에 거둔 파란배추국으로, 또는 멀리 프랑크푸르트 린덴바움(보리수) 특산의 새콤한 사과술로 독자를 위로한다. 김훈 작가에게 이런 디테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천부당만부당이다. 오직 그녀였기에 가능한 일일 게다.

 

<모르는 여인들>은 나에게 참으로 롤러코스터 같은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어떤 때는 지나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망감으로, 때로는 이렇게 멋질 수가 하는 경이로움으로 또 혀 안 가득 고여 오는 엄마표 밥상에 대한 허기의 전주곡으로 각인됐다. 삶의 어느 순간, 관계 때문에 심신이 허전한 이들에게 이렇게 시원한 앵두화채 같은 모르는 인연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선사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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