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1 - 결의 형제
이두호 지음 / 자음과모음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오늘 도서관에 안보윤 작가의 <사소한 문제들>을 빌리러 갔다. 그런데 문득 눈에 띄는 만화 전집이 있었다.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나온 32권 짜리 임꺽정 시리즈였다. 빌릴 수 있는 한도가 1인 하루 5권이라고 해서, <사소한 문제들>과 나머지 네 권은 모두 <만화 임꺽정>을 빌렸다. 그렇게 우리 만화를 줄기차게 그린다는 이두호 화백의 만화를 정말 오랜만에 만날 수가 있었다.

사실 내가 아는 임꺽정이라고는 벽초 홍명희 선생의 미완성 작품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읽기에 부담 없는 만화가 있어서 참 다행이지 싶었다. 헌책방에서 산 벽초 선생의 임꺽정과 이두호 화백의 만화 임꺽정은 많이 달랐다. 전자가 임꺽정과 함께 활동하게 되는 주면인물들의 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후자는 백정의 아들 임꺽정이 어떻게 해서 검술의 달인이 되는지 그 과정을 중점으로 그리고 있다.

만화 임꺽정에서 양주 사는 주인공 임꺽정은 고을의 지주 박 좌수의 아들을 골탕먹인 죄로 어쩔 수 없이 정든 마을을 떠나게 된다. 어려서부터 괴력을 소유한 영웅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 그전에 앞서 만화는 훗날 임꺽정을 토벌하게 되는 토포사 남치근과 임꺽정의 질긴 인연의 끈을 슬쩍 보여준다. 명종 10년(1555)에 일어난 을묘왜란에서 왜군에게 포위되었다가 임꺽정의 활약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남치근은 뛰어난 무공을 보여준 백정 임꺽정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

영웅서사에서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 겪게 되는 고난과 역경은 만화 임꺽정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지주 박 좌수의 핍박을 피해 서울로 가는 길에 구공 스님을 만나, 일생의 스승인 전다비를 만나 절세 무공을 익히고 전가의 보도 <제민도>를 득템하기에 이른다. 훗날 의적 두목으로 신출귀몰하며 관군을 농락하게 될 기본 기술과 무기의 바탕에 대한 설명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스승을 떠난 임꺽정은 두 번째 스승 갖바치(양주봉)에게 글을 배우며 몰락한 양반의 후예 장학봉과 의지할 곳 없는 떠돌이 소년이자 돌팔매의 명수 조금맹과 의형제를 맺는다. 박 좌수 아들의 행패와 산 속에서 의형제 결의를 맺는 임꺽정과 장학봉 그리고 조금맹을 역모로 엮겠다는 포졸의 행태에서 부패한 관리의 실상을 엿볼 수가 있었다. 자, 이제 주인공의 바탕과 주인공을 도울 사이드킥이 준비되었으니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갈 차례다.

왕조국가 조선에서 사농공상이라는 성리학적 신분질서는 사회구성의 근간이었다. 이런 기본 사회 구성요소에도 들지 않는 백정은 천민으로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다. 백정의 자식은 영원히 백정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조선 사회 신분질서였다. 이런 계급적 질서를 인정할 수 없었던 임꺽정이 고를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반역이었을 게다. 아직 만화에서는 형상화되지 않았지만, 주인공 임꺽정이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한 신분질서의 진실을 깨닫는 순간 그 폭발력은 어떨지 궁금하다. 당분간 열심히 도서관에 출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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