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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의 노래(들) - 닉 혼비 에세이
닉 혼비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이번엔 노래다. 일전에 책에 대한 영국 출신의 작가 닉 혼비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닉 혼비가 평생 좋아한 31곡의 노래에 대한 자신의 감상, 느낌 그리고 특별한 인연을 소개한 책을 읽었다. 어려서부터 팝송을 좋아해서 그런 진 몰라도 이 책에 정감이 간다. 표지에 실린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린 카세트테이프며 타이프라이터가 인상적이다. 아마 닉 혼비는 비 내리는 런던의 어느 카페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쓰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주 잠깐.
어차피 <닉 혼비의 노래들>은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어서 일단 목록을 훑어봤다. 가수의 이름은 알지만 나름 팝뮤직 좀 들었다고 자부하는데 아는 곡이 하나도 없었다. 좌절했다. 그나마 맨 끝에 실린 우리에게는 영화 주제가 <라 밤바>로 널리 알려진 로스 로보스부터 읽기 시작했다.
지금 로스 로보스의 <관따나메라>를 들으며 이 글을 쓴다. “OK guys, we’re rolling”으로 시작되는 신나면서도 경쾌한 이 곡은 아쉽게도 가사가 스패니시라 한 마디도 알아먹을 수가 없다. 그나마 영어라면 가사 해석이 조금이라도 가능할 텐데 말이다. 그리고 보니 닉 혼비는 가사가 없는 클래식 곡은 안 듣는다고 했던가. 어쨌든 음악을 듣는 사람이 흥겨움을 느껴 춤출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음악의 본령이 아니겠느냐고 닉 혼비는 자신 있게 독자에게 묻는다.
닉 혼비는 좀 능글맞을 정도로 자기가 수십 년 동안 들어온 노래에 자신의 삶을 슬그머니 투영시킨다. 아는 노래라고는 <Born in the U.S.A.> 밖에 모르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Thunder Road>를 그야말로 카세트테이프가 다 늘어지게 들었노라는 자기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서 산타나의 음악을 내심 첫 섹스의 사운드트랙으로 쓰겠노라고 결심했다는 이야기까지 특정음악과의 특별한 인연을 줄줄이 사탕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보니 나도 아주 오래 전에 크리스 드버그의 <The Lady In Red>라는 노래에 미쳐서 한 시간짜리 카세트테이프에 온통 그 노래만 녹음해서 워크맨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무도회장에서 만난 붉은 옷의 여인에 대한 크리스 드버그 식 예찬이었던 것 같은데 그 노래가 아직까지도 그렇게 기억이 난다. 오죽했으면 영어라고는 관심이 없던 내가 어렵사리 가사를 구해(그 시절에는 아쉽게도 인터넷이 없었다) 그 어려운 영어 가사를 다 외웠을 정도니까 말이다. 맨 끝에 크리스 드버그가 속삭이는 “I love you”는 정말 압권이었다.
리메이크에 일견이 있는 로드 스튜어트에 관해서도 닉 혼비의 붓은 쉬지 않는다. 보통 오리지널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오리지널 곡만큼 그가 부른 다른 가수들의 노래 또한 일품이다. 개인적으로 아이슬리 브러더스의 <This Old Heart of Mine>은 특히 좋아하는 곡이어서 그런지 책에서 만났을 때 반가웠고, 결국 예전 CD를 찾아서 듣기까지 했다.
독주(solo play)에 관해서도 닉 혼비는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을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물론 아티스트가 어느 특정한 상황에서 애드립으로 연주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찬성한다. 하지만 가끔 어떤 경우에는 청중으로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고, 연주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 독주가 등장하기도 하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그럴 적에 닉 혼비는 과감하게 연주회장을 떠나라고 선동한다! 실제로 펍에 가서 맥주도 한 잔 마시고 또 당구도 한 게임 쳤다고 했던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음악을 즐기라는 말이다. 옳거니!!!
솔직히 말해서 <닉 혼비의 노래들>을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곡들이 등장해주길 바라 마지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개인의 취향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새로운 곡들과의 만남 역시 즐거운 체험이었다. 보통의 책읽기가 상상력과 읽기(시가적인 차원)였다면, 닉 혼비의 노래들은 그것을 뛰어넘어 ‘듣기’까지 도달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