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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로라 리프먼 지음, 홍현숙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엘리자 베네딕트는 소위 잘 나가는 남편 피터, 딸 이소 그리고 아들 앨비와 함께 교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자가 한 통의 편지를 받으면서 베네딕트 가정에 잔잔한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수 있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 엘리자가 잊고 싶어 하던 과거의 끔찍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나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의 저자 라우라 리프먼은 테스 모너핸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 볼티모어 출신의 작가다. 이 책에서 작가는 1985년 십대 소녀만을 골라 살해한 연쇄 살인마 월터 보먼에게 납치되어 39일간 악몽 같은 고통을 겪다가 구사일생으로 생환한 소녀 엘리자베스 러너의 이야기를 마치 르포 기사처럼 재구성한다. 한 번은 현재 엘리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다른 한 번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
마지막 희생자를 폭행하고 끔찍하게 살해한 죄목으로 버지니아 주에서 사형 선고를 대기하던 월터 보먼은 범죄자를 구호하는 사회운동을 하는 바버라 라포투니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한다. 잘 나가는 남편을 좇아 참석했던 파티 사진에서 과거를 지우고 살고 있던 엘리자를 월터가 발견한 것이다. 바로 이런 개연성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납치 당시에도 가족을 모두 죽이겠다는 협박 때문에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어린 엘리자베스는 이 악랄한 시리얼 킬러로부터 도망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월터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자신에 대해 너무 방대한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점증적으로 다가오는 월터의 위협 앞에 마침내 엘리자는 정면으로 맞서기로 결심한다.
소설은 처음부터 한 가지 사실을 감춘다. 범인 월터는 왜 예외적으로 엘리자만을 죽이지 않았던 걸까? 잘난 인물에도 불구하고 이성 관계에서는 젬병이었던 월터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워나간다. 물론 사회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방법을 이용해서 말이다. 월터는 프랑스 출신 철학자 자크 데리다를 뺨치는 실력으로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고, 정당화한다. 십대소녀 엘리자에게 이런 일탈을 일삼는 월터는 확실히 버거운 상대였다. 라우라 리프먼은 어찌 보면 조금은 장황한 전개를 통해 1985년 여름에 발생한 끔직한 사건의 진실을 한 꺼풀씩 벗겨낸다.
충실한 남편 피터에게도 엘리자는 자신이 겪은 악몽의 전부를 알려 주지 않는다. 그녀가 남편 피터에게 말한 대로 23년이라는 세월 뒤에 다시 비극을 떠올려 보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 수가 없단다. 선택적 기억상실이라는 표현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에는 많은 가치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연쇄 살인마로부터 가정과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엘리자의 노력, 비록 자신들의 딸이 월터에게 피해를 입었지만 원칙적으로는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러너 부부의 대의, 피해자에게는 괴물로 낙인찍힌 월터를 구호하는 바버라 그리고 ‘눈에는 눈’식의 복수를 원하는 피해자의 부모의 호소가 복잡하게 마주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해결책이란 과연 존재하는 걸까?
1985년이란 시간적 배경을 구체화하는 팝차트를 석권했던 팝가수 마돈나와 왬의 히트곡 제목을 소설의 각장의 부제로 올리는 라우라 리프먼의 센스가 돋보였다. 꾸준하게 등장하는 새로운 캐릭터는 소설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장치로 멋지게 작용했다. 간만에 서스펜스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문학의 ‘저글러’를 만나 즐거운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