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뉴욕
이숙명 지음 / 시공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 회사를 그만 두고 유럽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아마 5월 달이었던 것 같은데 의외로 나와 비슷한 루트를 밟아 장거리 여행을 떠난 이들이 많았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이들과의 만남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먹고 살 수 있는 걱정만 해결된다면 몇 달 정도 그렇게 외유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겠지만. <어쨌거나, 뉴욕>의 저자 이숙명 씨는 그런 점에서 ‘삽질러스’의 선구자라고 할 수가 있겠다.

모두 열 개의 챕터로 구성된 빅애플 체험기의 첫 장을 선구자 삽질러스는 오롯하게 자신이 어떻게 해서 십년간 밥벌이를 하던 잡지사를 과감하게 때려치우고 뉴욕으로 떠나게 되었는지 소상하게 심드렁한 독자에게 알려준다. 아, 이거 호기심이 점점 달아나기 시작하는 걸. 내가 원한 건 그녀의 지겨운 잡지사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흠……. 하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바로 원하는 뉴욕 이야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첫 번째 빅애플 스토리는 그녀가 어떻게 해서 맨해튼에서 아파트를 구하다가 프랑스 계집애에게 그야말로 피같은 종자돈 2,400달러를 털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눈물겨운 인스톨이다. 그녀의 주장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도움이 있는 법.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NYPD의 도움으로 1/3 가량을 돌려받고 나머지는 퉁쳐야 했다는 도시 전설로 그녀의 활극이 시작된다.

저자는 거창하게 자아를 찾거나, 단시간 내에 영어를 마스터하겠다는 그런 허황된 꿈을 들려주지 않는다. 그저 무료한 삶을 살면서, 얹혀살게 된 룸메이트 보따리 장사와 뉴욕을 헤집으면서 쇼핑질을 해대고, 물 좋다는 클럽 순회를 하는 그야말로 시간 죽이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어쩌면 그런 도전도 그녀 나이에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손에 쥔 것이 많을수록 쉽게 떠날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녀가 빅애플의 클럽에서 직접 체험한 접신인지 무당 내림굿 댄스인지 구분이 안가는 이야기에서 그야말로 빵 터졌다. 아무래도 다년간의 잡지사 경험이 축적된 모양인지, 어느 시점에서 독자를 현혹해서 웃음을 터지게 해야 하는지 잘 아는 고수의 솜씨다. 동료 룸메이트들을 한국으로 떠나보내고 새로 살 집을 구하는 장면에서는 오래 전에 해마다 아파트를 구하느라 고생한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정말 여름만 되면 이사 가기에 앞서 서식처를 구하느라 밤잠을 다 설칠 정도였다. 물가와 집세 비싸기로 유명한 맨해튼에서 1,300달러 우리 돈으로 하면 1,500,000원이나 되는 거금이 든다니 참 놀랍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뉴욕을 꿈꾸는 청춘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호사스러운 생활을 한 것도 아니고.

역시 전공을 살려 참가했던 셀렙의 화보촬영과 인터뷰 이야기는 그야말로 “프로페셔널”스럽다. 서당개가 풍월을 세 번은 더 읊었을 시절을 유수의 잡지사에서 보낸 베테랑답게 현장의 분위기를 적절하게 중계해 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담백하게 담아낸 글이 그야말로 보석처럼 빛나는구나. 남아도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미소녀들이나 힙합전사의 뒤를 밟는 스릴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아리까리 달달한 로맨스도 양념처럼 추가된다. 그 나라 언어를 확실하게 단기간에 배우는 첩경이라는 현지인 남자/여자친구 만들기에도 서슴지 않고 도전한다. 3분에 한 번 꼴로 자신을 웃겨주는 뉴욕 식객과의 만남으로 6개월 간의 뉴욕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에 담은 이야기만으로도 이렇게 재밌는데 미처 담지 못한 공란에는 또 어떤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하고 말이다. 아마 미국 생활을 접을 무렵에 도전했다는 남미여행기 역시 한 권의 책으로 내기에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분통 터지는 일조차도 발랄한 에피소드로 승화시킨 이 멋쟁이 삽질러스는 뉴욕을 꿈꾸는 반지원정대 청춘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도 빠뜨리지 않는다. 오만가지 종류의 뉴욕을 다룬 책이 넘쳐나는 마당에 이렇게 무위도식의 진수를 보여준 책이 이제야 출간되었다니! 굳이 아쉬운 점을 하나 들자면, 글과 사진의 부조화 정도? 뉴욕 생활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서 곳곳에 실린 사진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초반에 다짜고짜 등장하는 조금은 생뚱맞아 보이는 뉴욕 사진은 좀 아닌 것 같다. 뭐 어쨌거나, 뉴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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