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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팡 수난기 - 루이 14세에게 아내를 빼앗긴 한 남자의 이야기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역사적 사실 하나. 1663년 1월 28일 프랑수아즈 드 로슈슈아르 드 모르트마르와 루이 앙리 드 파르다이양 드 공드랭 결혼 서약하다.
프랑스 출신으로 시나리오 작가, 희극배우, 영화배우, 만화작가 그리고 소설의 영역에까지 손을 뻗친 장 퇼레의 <몽테스팡 수난기>는 왕권신수설을 바탕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에 성공한 태양왕 루이 14세 시대에 있었던 스캔들에 블랙유머를 양념 삼아 기가 막히게 버무린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군주에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금발의 고혹적인 미녀 아내를 뺏긴 어느 오쟁이 진 남자 몽테스팡 후작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태양왕 루이 14세(1638~1715) 이야기가 궁금해서 네이버캐스트에 나온 태양왕 편을 읽어봤다. 사실 즉위 초기만 하더라도, 루이 14세는 후세에 알려진 것으로 그렇게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왕권은 신성하다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와 지롱드의 난 그리고 30년 전쟁으로 강력한 중앙정부를 원하던 시대정신은 루이 14세에게 기회를 부여했다. 마자랭과 콜베르라는 명재상을 기용해서 내치를 다진 태양왕의 프랑스는 유럽의 강국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베르사유 건설과 상비군의 강화 그리고 근대적 예술가 후원 시스템의 확립은 루이 14세 시기를 상징한다. 주목할 점 중의 하나는 복잡하기 짝이 없고 세련된 궁정 예법을 도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루이 14세는 연애활동에도 열심인 왕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오쟁이 진 남편 몽테스팡 후작과 그의 아내 아테나이가 등장한다. 어처구니없는 결투로 약혼자를 잃은 프랑수아즈는 당탱의 동생 루이 앙리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가난하지만 사랑에 불타는 젊은 부부는 사랑놀음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놀음을 위해선 고금을 막론하고 자금이 필요한 법. 가스코뉴 귀족은 자비를 들여 몇 번의 원정에 나서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빚만 잔뜩 지게 된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채무자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 철부지 부부는 ‘덩더쿵’ 사랑놀음에 정신이 없다.
한 방으로 인생역전의 기회를 찾던 루이 앙리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오는데, 그것은 온전하게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아내 아테나이를 통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행운은 루이 앙리와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부부가 세 들어 사는 가발가게의 도제들을 온통 흥분의 바다로 몰아넣은 천하절색 아테나이가 왕비의 시녀로 발탁된 것이다. 그것으로 그쳤다면 좋았으련만, 호색가 루이 14세의 눈에 든 아테나이는 아예 그의 정부가 된다.
이제부터 장 퇼레의 블랙유머가 작렬하기 시작한다. 다른 이들은 절대군주의 정부가 된 아내 덕분에 금력과 권력을 모두 행사하게 된 루이 앙리를 부러워하지만, 진심으로 아테나이를 사랑하는 이 가스코뉴 남자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회유와 협박, 유배 그리고 암살기도까지 차단해 내면서 오로지 사랑하는 아테나이가 자신에게 돌아오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이미 베르사유의 진한 향기에 취해 버린 아테나이가 돌아올 리는 만무하다. 국왕을 조롱하기 위해 사슴뿔로 장식한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공개적으로 남의 아내를 뺏어간 루이 14세를 비난하는 루이 앙리는 그야말로 왕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장인마저 왕의 정부가 되어 버린 딸을 두둔하는 말에 “장인 살해범”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까 1초간 고민하는 몽테스팡 후작의 상상은 정말 압권이었다. 하나 더 추가하면, 베르사유에 잠입한 몽테스팡을 도와주려고 가발가게 도제들이 만든 인간 사다리는 정말 눈물겨웠다.
<몽테스팡 수난기>를 읽으면서 신화의 재현이 떠올랐다. 제우스가 영웅 암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를 취해 낳은 헤라클레스 이야기와 아테나이를 자신의 정부로 만들어 무려 6명의 사생아를 낳은 루이 14세의 실화는 그대로 공명한다. 수많은 공국으로 나뉘어 있던 프랑스의 국가질서를 바로 잡고, 국왕-귀족 그리고 평민의 질서를 세우겠다고 공언하던 태양왕이 실제로는 파렴치하게 시골 귀족의 아리따운 아내를 취해 부도덕한 일을 공공연하게 벌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당시 지배계급의 치부를 그대로 들어낸다. 루이 14세가 원하던 국왕의 권위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베르사유 궁전, 사치스러운 궁정 생활이나 국민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든 대규모 원정이 아니라 청렴과 결백의 기초를 이루는 공명정대한 군주의 도덕성에 있었다는 점을 그는 정녕 몰랐을까?
장 퇼레의 책은 처음으로 읽었는데, 팩션 장르로 역사의 빈 공간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작가의 역량에 깜짝 놀랐다. 자신을 버린 아테나이를 잊지 못해 빈 관으로 장례식을 치르는 오쟁이 진 시골 귀족의 짠한 순애보를 읽으면서, 허구와 사실 사이를 이렇게 능숙한 솜씨로 다룬 작가에게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검은 미사 사건> 같이 끔찍한 스캔들과 어쩔 수 없는 육체의 노쇠로 결국 국왕의 총애를 잃은 아테나이가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했을까 과연 루이 앙리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렇게 <몽테스팡 수난기>는 짧은 행복 뒤에 자신을 숙명처럼 쫓아다닌 비극의 연쇄반응에 대담하게 맞선 가스코뉴 남자의 아련한 순애보를 수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