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 이 시대에 읽어야 할 명저 강의
박찬운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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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가을엔가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하는 김호기 교수님의 강좌를 들었다. 모두 4강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중에 막스 베버의 책 때문에 강연을 신청했다. 하지만, 역시나 직장인으로 퇴근한 후에 강연 듣기만 참 난망했다. 2강을 듣고 나머지는 포기해 버렸다. 그렇게 나와 하버마스 그리고 푸코의 인연은 멀어져 갔다. 그래도 첫 강의였던 에밀 뒤르켕과 막스 베버의 강의는 참 인상적이었다. 온라인 매체인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박찬운 교수가 고른 16권의 명저 소개에 들어가 있는 뒤르켕의 <자살론>이 그래서 더 반가웠나 보다.

법학자가 꼭꼭 씹어서 들려주는 사회학의 아버지 뒤르켕의 명저 <자살론> 이야기는 흥미롭다. 수사학과 논리학같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학문과는 달리 비교적 후발 주자에 속하는 사회학의 연구 범위와 주제를 설정한 연구가는 철저하게 개인의 행위인 자살이 갖는 사회적 의미에 방점을 찍는다. 39분마다 한 명씩 자살한다는 통계처럼 경쟁 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자살공화국에 사는 우리로서는 심각하게 고민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뒤르켕은 자살의 이유보다 자살의 사회성에 주목한다. 이 연구과정에서 그가 추론해낸 자살에 대한 사회학적 방법론은 이제 고전이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이기적, 이타적 그리고 아노미적 자살 분류법은 원전을 통해 다시 한 번 접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자는 여전히 내 사무실 책상에 올려져 있지만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다. 아쉽게도 김호기 교수님의 강좌에서 빼먹은 바로 그 강의다. 평생을 인간의 이성 연구에 소진한 푸코의 글을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는 저자의 말에 용기가 용솟음치지만, 여전히 프랑스 본토인들도 어렵다고 말하는 그의 저작은 그야말로 넘사벽일 뿐이다. 이성이 근대의 기초를 이루었다고 생각되지만, 푸코는 반대로 억압된 자유, 통제 그리고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된 허상이 아닌 근대사회의 실체를 보라고 주문한다. 그 대안으로 인간의 이성 능력을 찬양하는 실존주의 철학보다 이성 저 너머에 있는 “구조”로 이 세상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감시와 처벌> 각론에서는 기존의 신체형이 아닌 범죄의 예방과 교화 차원에서 자유형으로 대변되는 감옥으로의 전환에 대해 푸코는 설명한다. 더 나아가 근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형 구축을 위한 방법론과 고도로 계산된 정치기술을 분석한다. 우리나라에 한 때 성행하던 국민체조 분석을 통해 신체는 물론이고 정신세계마저 지배하려고 했던 권력자의 의도를 저자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위해서라도 푸코의 책은 꼭 한 번 읽어봐야지 싶다. 과연 그 때가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권위에 대한 복종> 역시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책이다. 일찍이 한나 아렌트는 세기의 재판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다룬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 대해 말했다.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가스실로 몰아넣은 게르만 아저씨들이 절대 원래부터 흉악하거나 난폭한 품성의 소유자가 아니라, 정말 우리 이웃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은 사람들이 생각한 그런 괴물이 아니라, 한 명의 성실한 관료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 출신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실험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비합리적인 권위에 복종하게 되는가에 대한 비극의 원인을 밝히는데 도전했다. 적당히 살고 좋은 게 좋은 것일까? 우리는 너무 익숙한 이런 표현에 길들여진 게 아닐까? 저자는 비합리적인 권위라면 저항하고 분노하라고 분연하게 주문한다. 버트런드 러셀의 말을 빌려 불편한 진실이라도 반드시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박찬운 교수는 이런 딱딱해 보이는 책 말고도 C.W. 세람의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과 같은 인문학적 소양을 넓힐 수 있는 책도 추천한다. 고고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고고학에 정통한 비전문가가 부드럽게 풀이해주는 책이야말로 나같은 문화이방인에게 적합하지 않을까? 세람에 따르면 과거는 미래를 항해하는데 꼭 필요한 나침반과 같은 것이다. 저자가 고른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얽힌 부분에 대한 해설은 정말 흥미로워서 당장에라도 원전이 읽고 싶어졌다. 아울러 시민을 압도하는 거대한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에게 문화 유전자를 물려주기 위해 박물관이나 도서관 같은 공공건물이 필요하다는 실질적인 제안도 마다하지 않는다.

2010년 출판계 최고 베스트셀러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하버드대학교와 정의라는 코드가 맞물리면서, 공정과 정의에 목마른 많은 이들이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샌델 교수의 책이 인식의 문제였다면, 존 롤스의 <정의론>은 그 인식을 실천의 영역으로 확대한다. 롤스식 세상 바꾸기의 시작은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정의에 대한 원칙을 세우는 것이었다. 저자는 본격적인 정의에 대한 설명에 앞서 공리주의와 사회주의적 접근의 장단점을 냉철하게 분석한다. 소수의 권익 보호와 개인의 자유가 합의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롤스의 꿈이었다. 롤스의 요약을 따르면 사회적 부를 배분하는 원칙이야말로 <정의론>의 핵심이란다.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롤스는 사회주의 시스템이 가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평등적 자유주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가 가진 모순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무상급식과 건강보험을 우리가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최소한 사회안전망이라고 규정한 부분에서는 정말 벌떡 일어나 격하게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 우리가 읽어야할 고전과 명저를 읽었다면 마땅히 의식의 전환과 그에 따른 실천이 뒤따라야할 것이다. 아무런 깨달음이 없는 관념적 책읽기라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책을 읽고 실천에 나서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독서인이 세상에 답하는 방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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