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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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한 때 리니지 폐인이었다. 레벨 올리는 재미에 낮과 밤이 바뀐 줄도 모르고 그렇게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시간을 죽이곤 했다. 레벨 40을 달성하지 못하고 어느 날 돈오의 순간이 찾아왔고, 그 순간으로 바로 게임 중독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리니지라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에서 은퇴했다. 그러다 만난 강희진 작가의 <유령>은 다시 나를 아련한 옛 시절의 추억으로 인도했다. 그의 소설 중심에는 리니지 게임의 <바츠 해방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직면하게 될 탈북자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버무린다.

역시 독자는 자신이 체험하거나 관심이 있는 주제에 쏠리기 마련인가 보다. 어제 책을 받았는데 그날로 다 읽어 버렸으니 말이다. 우선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에 앞서 도대체 이놈의 <바츠 해방 전쟁>이 무언가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인화 선생의 사설을 만났고, 온라인 게임계의 전설처럼 남은 혁명전쟁의 실체를 접할 수가 있었다. 다중접속 게임의 신화를 창출한 엔씨소프트의 대작 게임 리니지2의 바츠 서버에서 일어난 디케이 연합의 독재와 횡포에 맞선 하층 민중의 반발이 이 엄청난 서사의 실마리를 이루는 발단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현실의 그것과 닮았는지, NPC 몬스터를 사냥하는 사냥터와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는 장터를 장악한 디케이 연합의 증세로 촉발된 이 대서사극은 뼈단검이라는 기본 무기와 변변한 갑옷도 하나 없는 내복단의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웅적 활약으로 마침내 자유, 평등 그리고 동지애를 앞세운 혁명군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고 승리 후의 혁명군 내부의 분열과 절치부심하며 실력을 기른 디케이연합군의 역습으로 모든 것은 일장춘몽의 신화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아니 그런데 그 이야기가 <유령>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데?

소설을 쓰기 위해 <바츠 해방 전쟁>과 리니지 게임을 직접 해봤을 작가는 주인공 화림/주철(그의 정체성도 모호하기만 하다)이 <바츠 해방 전쟁>을 주도한 온라인 게임의 영웅이자 군주 쿠사나기라고 설정한다. 조지프 캠벨의 신화론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비록 온라인의 세계이긴 하지만 남들보다 정말 특이한 체험(<바츠 해방 전쟁>의 지도자이자 영웅)을 한 주인공이 현실 세계에 적응하기란 정말 난망하다. 게다가 그는 아사가 만연한 북한에서 탈출한 탈북자 출신이다. 게다가 백석 시인의 필명을 딴 백석공원에서 벌어지는 엽기적인 연쇄살인이라는 미스터리까지 가세해서 이야기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사실 소설에서 그 범인이 누구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와 현실세계를 도대체 구분하지 못하는 주인공 삶의 궤적에 더 관심이 간다. 솔직히 온라인 세계에서는 최고 절정의 기량과 리더십을 자랑하는 전사가 현실세계에서는 정말 찌질한 캐릭터일 수도 있다는 설정은 진부하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현실세계에서 잘 나가는 놈이 가상현실에서도 짱이다라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말이다. 하긴 현실세계에서 그렇게 바쁜 사람이 온라인 게임에 투자할 시간이 어디 있겠냐만서도.

작가가 또 다른 이야기의 축으로 삼은 탈북자의 삶도 왠지 겉도는 느낌이다. 그가 그리는 북한의 실상은 너무 피상적이고 감상적이다. 몇 줄만 검색창에 치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바츠 해방 전쟁> 같은 소재 말고, 탈북자들의 진짜 모습을 찾기 위해 고심한 흔적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보편적인 이야기가 어쩌면 가장 특수한 예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바츠 해방 전쟁>이 나 같은 보통 독자에겐 특별한 것처럼 어마이를 찾아 남녘으로 내려온 주인공의 신산한 삶에 대해서도 좀 더 정교한 통찰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집단화된 사회주의도 싫지만, 인간미를 찾을 수 없는 자본주의는 더 나쁘다는 식의 양비론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신의 가르침보다 개인의 욕망을 쫓는 전도사를 보니 종교도 답이 아닌가 보다. 그럼 도대체 우리는 어디서 구원과 안식을 얻어야 한다는 말인가.

어쨌든 소설은 참 재밌게 읽었다. 우리나라 소설은 소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렇게 온라인 게임에 기초한 디지털 스토리텔링과 예상하지 못했던 서사에서 재밌는 이야깃감을 캐내는 걸 보면 그건 확실히 엄살이다. 강희진 작가가 차기작에서는 또 어떤 기발한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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