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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ㅣ 펭귄클래식 7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노승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예전에 그 유명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모음집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처음 만났다. 항상 그렇지만, 고전 읽기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는 기분이다. 사실 다시 읽기 전까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복수에 나서는 젊은 왕자 햄릿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재독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여러 가지 생각과 마주칠 수가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독서 토론 모임은 책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도 안겨 주었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구나, 굳이 움베르토 에코의 해석을 빌리지 않아도 텍스트와 해석 쌍방 권리는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원제는 ‘덴마크의 왕자, 햄릿의 비극적 역사’라고 명백하게 이 희곡이 비극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정말 수많은 텍스트를 통해 재생산된 햄릿의 복수와 비극은 역시 원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라이언 킹> 역시 모티브가 바로 햄릿에서 온 게 아니던가.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같은 이름을 가진 아버지 햄릿을 잃는다. 그런데 왜 왕위계승자 1위인 왕자 햄릿이 아닌 숙부 클로디어스가 왕위에 올랐을까? 게다가 어머니 거트루드는 아버지 묘의 흙이 마르기도 전에 시동생과 결혼한 걸까? 미스터리로 희곡은 시작된다.
게다가 억울하게 죽은 것으로 나중에 드러나게 되는 선왕 햄릿은 유령의 모습으로 현세에 개입해서, 자신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를 아들 햄릿에게 당부한다. 그렇지 않아도 석연치 않은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있던 햄릿에게 아버지의 유령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야말로 분노의 도화선을 당긴다. 동시에 햄릿의 그 유명한 광증과 정신착란이 발병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후에 왕자가 벌이는 일련의 사건은 너무 정교하다. 숙부 클리디어스의 음모 확인을 위해 떠돌이 유랑극단에 자신의 아버지 죽음에 관한 무언극을 보여주고, 심복 호레이쇼에게 클로디어스의 반응을 유심히 관찰하라는 밀명을 내리고, 자신을 영국에 보내 죽이려는 음모를 사전에 분쇄한다. 이게 과연 미친 사람이 계획한 일이란 말인가?
어머니 거트루드에게 숙부와의 재혼은 ‘근친상간’이라고 말하며 어머니의 가슴을 찢어놓는 햄릿. 모자 사이의 무슨 일이 있는가 파악하기 위해 자진해서 왕비의 방으로 잠입(이 부분도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한 햄릿이 사랑하는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마는 햄릿. 이렇게 해서 아버지를 잃은 오필리어는 실성해서 익사해 버리고, 그녀의 오빠 레어티스는 국왕 클로디어스와 공모해서 아버지와 사랑하는 여동생의 복수를 맹세한다. 유령이 시작한 복수극은 극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을 파멸로 몰고 간다.
영적 존재가 선한 것만 아니라 악한 것도 있다면, 죽은 선왕 햄릿의 유령은 후자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새로운 시선으로 고전을 보기 위해 혹시 모든 것을 자신의 광증과 정신착란 탓으로 돌리는 햄릿의 말대로 아버지를 잃은 마음에 심신이 허약해진 나머지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이라면, 또 그런대로 말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를 비극으로 몰고 가는 햄릿의 복수가 통쾌한 것도 아니다. 최고의 복수는 용서라는 말이 있듯이, ‘햄릿이 냉정하게 상황 판단을 했다면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가정이 떠오른다.
고대 유대 유목사회도 아니고 기독교가 정착된 중세에 형사취수 시스템이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독서 토론 과정에서 이 비극에서 누가 가장 불쌍한가에 대해 이론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햄릿에게 철저하게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 오필리어가 가장 불쌍하다는 생각이다. 좀 더 나아가 과연 햄릿이 그녀를 사랑했는지도 의문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사는 일찍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햄릿을 분석했다. 햄릿의 억압된 욕망은 자신이 응징하려고 하는 클로디어스의 죄악보다 나은 것도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성적인 요소로 설명하려고 했던 프로이트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는 느낌이다.
가장 불쌍한 캐릭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아마 <햄릿>의 최고 수혜자가 이웃 나라 포틴브라스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원래 덴마크를 침공하려고 키우던 병사를 폴란드로 돌려 폴란드 정복도 완성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처구니없는 비극으로 왕가가 전멸된 덴마크까지 접수했으니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을까.
만날 하는 말이지만 고전을 읽어도, 읽어도 새롭다. 이 다음번에 다시 만나게 될 <햄릿>은 또 어떻게 나에게 다가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