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조각 창비청소년문학 37
황선미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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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을 너무 오래전에 보내서 이제는 그 시절이 어땠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지금 되돌이켜 봐도 그 시절에 공부하라는 소리 말고는 좋은 소릴 들어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뉴스를 들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강화된 사교육과 도를 넘는 살인적인 입시경쟁, 낭만적인 학창시절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말처럼 들린다. 황선미 작가의 <사라진 조각>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개선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 우리네 청소년 시절의 자화상처럼 다가온다.

주인공 신유라는 참 ‘잉여’스러운 캐릭터다. 아버지는 회사의 중역으로 늘 바쁘고, 한 살 터울 위의 오빠는 학교에서 잘나가는 우등생 그리고 엄마는 그런 오빠에게 올인한다. 그저 그런 성적에 그야말로 집안에서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존재인 유라를 엄마는 미국도 영국도 아닌 필리핀으로 유학 보내겠단다. 어떻게 보면 행복한 고민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오은주 여사는 자신의 희망이자 기대주인 유라의 오빠 신상연을 민사고에 보내기 위해 거치적거리는 존재인 딸내미인 유라를 멀리 치우려는 속셈이다. 유라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실망스러웠겠는가.

교우관계도 원만치 못한 유라는 이런 저런 일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자 가출을 감행하지만 막상 갈 곳이 없다! 으레 이런 청소년 소설에 등장하는 절친 같은 사이드킥 하나 없는 유라, 참 불쌍하다. 어쨌든 열몇살난 중학생이 갈 곳이 어디 있겠는가. 부모에게 자신을 봐달라는 관심유도형 가출을 결심하고 진주행 버스표를 사지만 결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게다가 핸드폰에는 자기를 찾는 한 통의 문자나 전화도 없다는 사실에 유라는 좌절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상연에게서 터져 나온다. 동물원에서 사자를 찾던 날, 유라는 우연히 오빠와 유학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재희를 본 것 같다는 의혹에 사로잡힌다. 설상가상으로 상연과 그의 우등생 친구들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위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어머니들은 유라네 집에 모여 대책을 의논하고, 유라는 우연찮게 그걸 엿듣게 된다.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황선미 작가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어느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미스터리까지 추가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대가 바뀌어도 개선되지 않는 우리네 교육문제의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어느 특정한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고학력 일류대 선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선행이 꼭 필요하다. 모두가 내시 균형에도 등장하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에 빠져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교육 시장에서 이전투구 하는 방식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이기심은 오히려 교육 문제를 악화시킬 따름이다. 다른 사람이 하는 사교육을 나라고 하지 않겠는가.

공교육 시스템에서는 항상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에 적합한 전인교육을 부르짖지만, 현실과의 메울 수 없는 괴리 때문에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들에게 얼마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아울러 가정문제 역시 되짚어 볼 일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행복한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부모 세대의 책임이 아닐까. 그저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식의 물질주의에 기초한 이기주의야말로 우리가 지양해야할 일일 것이다.

문득 엉뚱하지만 이런 상상을 해봤다. 우리나라에 만약 살인적인 입시경쟁이 없었다면 우리네 청소년 작가들은 과연 어떤 주제를 글의 소재로 삼았을까 하고 말이다. <사라진 조각>에서도 여타의 청소년 소설에 공식처럼 나오는 우등생에 대한 도식이 등장한다. 하긴 늘 공부 안하고 말썽 부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뭐가 색다를 게 있을까. 공부 잘하는 범생이들의 일탈이 이야깃거리가 되겠지. 그렇다고 마냥 르포 스타일의 글도 마뜩치 않고, 간만에 읽는 청소년 소설을 접하면서 청소년 소설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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