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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 ㅣ 펭귄클래식 6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강석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그 위대하다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당당하게 한 자리를 꿰고 있는 <오셀로>를 다시 읽었다. 굳이 이탈로 칼비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제 고전이라 하면 ‘다시 읽어야’ 한다는 건 식상하기까지 하다. 의심 때문에 아내를 죽인 어느 반편이 같은 남편의 이야기가 원작이 쓰인지 수백 년이 지날 때까지도 계속해서 독자를 유혹한다는 것은 그 이야기의 원형이 아직까지도 우리네 삶 가운데 작동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이 비극을 읽으면서, 제목에 내세운 주인공 오셀로보다 오셀로와 그의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희대의 모략가이자 ‘꾼’ 기질이 다분한 이아고가 이 비극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아고는 사이프러스로 부임한 무어인 총독 오셀로의 부관 자리를 내심 노리지만, 자신보다 인격적으로나 실력에서 뛰어난 캐시오를 오셀로가 등용하자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 부숴 버리겠어’라고 결심한다. 글을 쓰다가 문득 궁금해진 점은 이아고가 과연 비극적 결말을 예상하고 그런 치밀한 음모를 세웠는지였다. 항상 그렇지만 운명이란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을 한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손가락 사이를 쓱 빠져 나가듯이 그렇게 되게 마련이지 않은가 말이다.
이아고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자신이 캐시오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열패감에 사로 잡혀 사악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베네치아 시절부터 데스데모나를 사랑한 얼뜨기 로더리고를 이용해서 돈을 갈취하고, 어둠 속에서 캐시오를 습격하게 사주한다. 그런데 가만, 돈을 뜯어냈다고? 철저한 상업 국가였던 베네치아에서 권력과 명예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금전이었다. 권력에서 소외된 이아고는 차선으로 돈을 선택한다. 충분한 돈이 있다면, 나중에라도 권부에 다가설 수 있다는 명징한 판단이 들어서였을까, 이아고의 권력을 향한 의지(will to power)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이아고와 함께 비극의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남편 이아고에게 전달한 에밀리아 역시 전통 소설에서 보이는 평면적 인물에서 한참 벗어난 캐릭터로 등장한다. 남편의 성공을 위해서는 연옥에라도 뛰어 들겠다는 그녀의 폭탄선언은 가히 충격적이다. 오쟁이 진 남편은 과연 그런 치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남자의 성공을 위해 <은밀한 유혹>까지 시도한다는 건 자유연애주의가 만연한 현대에도 수용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럼 이제 이아고의 모함 때문에 오쟁이 진 남편으로 착각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처참하게 죽인 오셀로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지금도 여전히 일반적이지 않은 국제결혼, 그것도 무어인 출신으로 베네치아의 유력한 가문의 아름다운 데스데모나와 결혼한 오셀로는 이슬람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사이프러스를 지키기 위해 총독으로 부임한다. 베네치아의 최전방 전권을 가진 총독으로 파견될 정도라면, 인종을 떠나 그의 실력이 어떤지 알 수 있다. 군사나 정치면에서는 그렇게 유능하다고 판단되는 오셀로가 의외로 이아고의 거듭된 모략으로 파멸해 가는 과정은 그래서 더 생경하게 다가온다.
과연 오셀로가 그렇게 뛰어난 판단력의 소유자였을까? 왜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스스로 오쟁이 진 남편이라고 확신했을까? 자수성가가 한 유능한 장군이었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자신감 결여와 자신이 이룬 것을 언제라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 게 아닐까? 그동안 여러 전쟁터에서 승승장구해온 외적 자신감 내면에는 이런 심리적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이아고에 의해 촉발된 질투의 광기는 자신과 아내 데스데모나를 파멸로 몰고 간다. 관계자들을 동원한 대질 심문 한 번만 하더라도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시대에 이미 희곡 전문 작가가 등장할 정도로, 문화 소비시장이 있었나 보다. 21세기 한국에서는 먹고 살기에 바빠 연극이나 공연은커녕 책 한 권 읽기가 버겁다고 아우성이다. <오셀로>를 읽으면서 역시 희곡은 무대를 통해 접해야 제 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에 매 여름마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공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게으름 때문에 관람하지 못한 게 아쉽다. 물론 고어를 사용하는 셰익스피어 희곡을 제대로 알아들었을 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