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김보경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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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너무나 널리 알려진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 그는 작가이면서도 동시에 비행기 조종사이기도 했다. 그렇게도 비행을 좋아했고, 조국 프랑스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생텍쥐페리는 지구별에서 44세에 마지막 비행을 끝으로 우리에게서 떠나갔다. 이 책 <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는 이 위대한 작가가 세상의 필명을 날리기 전에 사랑하는 어머니 마리 드 생텍쥐페리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를 통해 그가 어떻게 성장했고, 글 쓰는 법을 배웠는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20세기 첫 번째 해에 리용의 오래된 귀족 가문인 생텍쥐페리 자작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보험중개인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의 네 번째 생일을 보지 못하고, 뇌출혈로 사망한다. 생텍쥐페리의 편지글을 읽다 보면, 거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유년 시절 아버지 부재의 영향 탓일까. 의도적이건 그렇지 않든 간에 작가의 삶에 아버지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생텍쥐페리는 스트라스부르에서, 사하라 사막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그리고 대서양 바다 건너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쉴 새 없이 편지를 쓴다.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 이 신성한 의식에는 철부지 아들의 어리광부터 시작해서, 어머니의 경제력에 의존해서 공부해야 하는 학생의 심정 그리고 비행사로 세상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여전히 날개가 자라 스스로 날 수 있을 때까지 어미 새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새끼 새의 마음이 곳곳에서 읽힌다.

십 대 청소년 시절에 처절한 1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전쟁을 체험했던 생텍쥐페리는 해군사관 학교 입학의 꿈을 키운다. 옮긴이의 주석에 따르면, 수학에는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문과과목의 구술시험에 실패해서 파리 고등미술학교의 건축학도로 일대 변신을 꾀한다. 편지글의 여러 곳에서 보이는 그의 데생은 아마 이 시절에 갈고 닦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약관의 나이에 스트라스부르 공군 비행연대에 자원하면서 비행과의 평생 인연을 맺는다.

작가의 유년시절에서부터 청년 그리고 장년을 아우르는 성장의 과정이 그의 편지글에 오롯하게 담겨 있다. 레인코트-구두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용돈을 요청하는 어린 생텍쥐페리의 글에는 뻔뻔함보다는 싱그런 귀여움이 묻어난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자주 답장을 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빨리 답장을 써달라는 앙탈도 빠지지 않는다. 학생으로 여러 종류의 시험 준비를 하는 스트레스를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로 풀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열심히 편지를 썼다. 한 가지 아쉬운 점 중의 하나는 어머니 마리의 답장도 함께 있었다면, 소통의 완성을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또 하나 궁금한 점 중의 하나는 사랑하는 아들이 충분하다고 느낄 만큼 그녀가 편지를 썼을까 하는 점이다.

예전에 이메일을 처음 접했던 시절에는 정말 생활에서 별 일도 아닌 일들을 글로 적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에게 보내곤 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청년 생텍쥐페리의 이야기도 비슷하지 않을까. 비행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비로소 이 자유로운 영혼은 그 날개를 얻게 된다. 국제 우편의 초창기 개척자로 활동하는 동시에 작가로서의 커리어도 쌓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그의 작가로서의 모습보다, 인간 생텍쥐페리가 지나온 삶의 궤적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된 점이 더 반가웠다.

20세기를 빛낸 시인이자 소설가의 또 다른 모습인 비행사의 원형을 알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한편으로는 치열한 시기를 살았던 작가의 기록에서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을 뽑아 올리는 재미도 쏠쏠치 않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말고 다른 책은 아직 읽어 보지 못했는데, <남방 우편기>나 <인간의 대지>도 찬찬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로 사하라를 사랑했던 싼마오보다 훨씬 더 오래 전에 사하라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의 글이 정겹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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