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9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이틀 전 밤에 잠자기 전에 조금만 읽고 자야지 하는 생각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비채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스물아홉 번째,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기리노 나쓰오 작가의 작품으로 민완 여탐정 무라노 미로가 등장하는 두 번째 작품과 만나게 됐다. 조금만 읽고 자야지 하는 내 바람과 달리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분주하다. 결국, 백 쪽이나 더 읽고 나서야 간신히 잠이 들 수가 있었다.

노란색 표지와 붉은색 코트를 입고 어디론가 뛰어가는 소녀의 일러스트가 인상적인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은 자살한 남편을 뒤로하고, 아버지 무라노 젠조의 뒤를 이어 탐정업계에 뛰어든 무라노 미로의 이야기다. 성인 비디오에 출연하는 여성 배우의 인권을 생각하는 모임을 이끄는 와타나베 씨의 의뢰를 맡게 된 미로. 얼토당토않은 성인비디오에 출연했다가 봉변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잇시키 리나라는 내레이터 모델을 찾는 것이 임무다.

확실히 여자 탐정이라는 이점을 충분히 살려 무라노 미로는 사건 해결에 필요한 단서를 하나씩 주워 모은다. 그 과정에서 이웃에 사는 동성애자 도모 씨에게 애정을 느끼기도 하고, 리나가 출연한 비디오 회사의 사장인 야시로와 관계를 맺기도 하는 일탈에 빠지기도 한다. 철저하게 중립을 지켜야 하는 탐정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거짓말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너무 완벽해서 빈틈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런 유능한 탐정보다는 미로처럼 조금은 허술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탐정 캐릭터가 더 마음에 든다고 할까.

미로는 사라진 리나를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도 마다치 않고, 고양이 시체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사건에 집중한다. 물론, 야시로 일당에게 험한 일을 당할 뻔도 하지만, 특유의 깡으로 위기를 정면 돌파한다. 문제는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야시로의 카리스마에 빠져 버렸다는 점이지만. 아무래도 홀로 뛰다 보니, 그야말로 고양이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모양이다. 홋카이도에서 은퇴해서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고 있던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한편,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도미나가 요헤이가 죽었다는 뉴스를 보던 중 도미나가 역시 리나가 가지고 있던 “빗방울 화석”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미로는 이 “빗방울 화석”이 결정적 단서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소설은 사라진 AV 배우 리나 찾기와 그녀를 찾는 탐정 미로의 시시각각 바뀌는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가난해서 옷 따위에는 쓸 돈도 없거니와, 미행에 필수인 자동차 한 대 없어서 빌려야 하는 그녀의 처지가 안쓰럽다. 하지만, 명탐정의 딸답게 특유의 오기로 자신의 실수를 딛고 사건 해결에 나서는 미로의 활약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이성애자에게 동성애자 친구는 어울리지 않는 걸까. 도무지 접점을 만들어낼 수 없는 이웃 도모 씨 대신에 고른 야시로는 자신을 알리바이로 철저하게 이용한다. 그런 감정의 기로에서 흔들리는 그녀의 모습에 완전무결한 탐정의 그것보다 훨씬 더 정감이 간다.

기리노 나쓰오 작가는 사건에 얽힌 다양한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말해 그녀는 장르 소설을 쓸 줄 아는 작가다. 역시나 독자의 일반적 추리를 뛰어넘는 결말이 인상적이다. 마무리가 너무 급작스럽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스릴과 재미로 충분히 보상됐다. 덤덤했던 전편에 비해, 무라노 미로의 인간적인 매력이 듬뿍 밴 시퀄에서 이 시리즈에 반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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